일부 방역·의료체계 감안 적잖은 피해 추측
동독도 과거 소극적 협정 통일후에나 성과
차제에 北 관심분야 우선 협력 제도화해야
과거 동서독은 어떠했을까? 서독의 동방정책으로 1972년 동서독은 우리의 기본합의서와 같은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교통, 환경, 보건, 체육 등 여러 분야에서 부속협정을 맺었다. 1974년 동서독 보건협정에서는 전염병의 예방과 퇴치에 있어 정보를 교류하기로 하였고, 의약품, 의학 기술품, 소모품 등의 내용을 공유하기로 하였다. 앞서 1973년에는 접경지역의 감염성 질환이나 재난, 환경오염 등이 상대국에 미칠 때 협력하기로 한 공동재난과 관련된 협정도 체결되었다. 사실 이러한 분야의 협력은 동독이 우선적으로 체결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서독에 비해 열세에 있었던 동독은 다른 분야에 비해 보건의료 분야의 협력이 동독 내에 미칠 영향을 가장 낮게 봤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협정에도 불구하고 통일 전까지 동서독 보건의료 협력분야에 큰 진전은 없었다. 동독이 여전히 소극적인 데다가 국제정세의 악화로 정치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남북간 보건의료분야의 협력은 어떤가.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체제위기 이후 보건의료체계의 붕괴를 경험하였다. 또한 중앙집권적 의료배급 시스템으로 인해 여전히 의약품 부족, 의료시설과 의료기술의 낙후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의료보험 체계의 부재로 도·농간, 계층별 보건의료 혜택이 상이한 것도 사실이다. 2000년대 이후부터 우리는 북한에 대규모 식량과 비료지원을 추진한 바 있고 이후 보건의료분야에 취약한 임산부, 영유아 등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지원을 지속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의 소극적인 태도로 국제기구나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었고 당국 차원의 구체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지난 2018년 9·19 평양공동선언의 후속조치로 남북 보건 당국 간에 보건의료 분과회담을 개최된 바 있다. 전염병 방지를 위한 정보교환, 결핵과 말라리아 등 치료협력, 중장기적인 방역과 보건의료협력을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하였지만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이후 추가적인 협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방역과 보건의료체계는 일거에 어느 수준으로 올릴 수 없다. 많은 재정이 필요할 뿐 아니라 전반적인 시스템의 질이 동시에 향상되어야 한다. 병원이 만들어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안을 채워야 할 의료기기와 의료진, 의약품과 기반 시설 또한 선진적인 수준이 되어야 한다. 남북한이 동등한 수준의 복지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적어도 수십년간의 상호 협력이 필요하다. 독일의 경우 결국에는 통일이 되어서야 보건의료 등 양측의 복지수준을 맞추는데 있어 수천억원의 재정이 투입되었다. 단순히 재정적인 투입을 넘어 남북이 생명과 건강 공동체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남북간에 협력을 해 나가야 함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코로나19와 지난한 싸움을 지속하고 있지만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코로나 확산에 대응하고 있는 나라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면서 우리가 남북간 보건의료 협력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과거 동독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의 소극적인 자세를 충분히 예견해야 한다. 북한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체제에 부담이 되는 사항은 뒤로 넘기고 예방의학, 한의학, 전염병 치료 등 북한이 관심있는 분야의 정보교류와 기술적인 분야의 협력을 우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세계보건기구(WHO) 등과 같은 국제기구와 연대하여 의료장비와 기술의 지원을 병행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교류가 보다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인적교류가 수반되고 정치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북이 상호 협력할 수 있는 제도화의 과정을 마련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