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발찌의 모티브가 된 게 만화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전자발찌는 1984년 미국 뉴멕시코주 지방법원의 잭 러브(Jack Love) 판사가 실용적인 전자발찌를 고안해 특정 범죄 전과자들에게 착용토록 한 게 시초다. 러브 판사는 만화 스파이더맨에 등장하는 위치추적장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모든 전자기기가 그렇듯이 전자발찌도 진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착용자의 이동 속도나 피부의 알코올 농도를 측정하는 기능이 추가된 전자발찌도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구금 효과 외에 과속이나 음주운전까지 통제 영역을 넓힌 셈이다.
그렇다면 전자발찌는 어디까지 진화할까. 30여년 전 개봉된 영화 '웨드록'(Wedlock)에서는 목걸이 형태로 업그레이드된 전자발찌가 등장한다. 국내에서 '개목걸이'란 이색적인 제목으로 개봉해 눈길을 끌었던 영화다. 미래사회가 배경인 이 영화에서는 고도의 과학기술이 탄생시킨 무시무시한 통제시스템이 선보인다. 교도소 수감자들은 전자목걸이를 차야 하는데 이 목걸이는 누구인지 모르는 다른 수감자의 목걸이와 연동돼 있다. 문제는 그 수감자와 100야드 이상 떨어지면 자동으로 목걸이가 폭발하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탈옥을 하려면 자신의 목걸이와 짝을 이루는 목걸이의 착용자를 찾아내 함께 탈옥해야 한다. 탈옥 과정이 첩첩산중인데, 탈옥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평생을 100야드 안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남녀 배우가 주인공인 이 영화의 원제가 'wedlock'(결혼)인 게 뭔가 심상치 않지만 제목에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고 하기에는 영화의 설정이 너무나 끔찍하다. 물론 이처럼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통제시스템은 영화 속 이야기다. 하지만 요즘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일상의 통제영역이 확대되는 것을 보면서 이따금 영화 속 전자목걸이가 떠오른다.
코로나19가 위협하는 것은 인류의 건강뿐만이 아니다. 사생활 보호와 자유, 인권 등 인간의 존엄적 가치들이 코로나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 방역의 명분이 워낙 크다 보니 급기야 자가격리자에게 '손목밴드'를 채워 관리한다는 발상까지 나왔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다. 인권과 반인권 사이에서 가치판단의 기준점이 이동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다. 인류가 쌓아온 소중한 가치들이 바이러스에 의해 해체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인 것 같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