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살 먹은 딸아이가 떠드는 말
"억지로 없애면 혈소판 또 죽어요"
26년전 다리 붕괴·세월호 6주기
기억과 선거前 터져나오는 막말
미안함은 커녕 생채기 또 헤집어
우리는 사람이라서, 슬픔을 오래 기억한다. 지금이야 이십대가 기절할 만큼 힘든 시기라지만 26년 전, 그때만 해도 스무 살은 자유와 해방을 뜻했다. 지겨운 모의고사와 내신에서 벗어나 마음껏 놀 수 있는 나이. 학사경고쯤 받으면 어때. 그런 것쯤 인생의 허물도 아니던 1990년대. 그런데 그런 일도 채 겪기 전에 검은 강물로 낙하했을 어린 청춘들과 어느 집의 아버지, 어느 집의 어머니, 누군가의 소중한 누군가들이 한순간 사라져버린 그 슬픔을 우리는 오래 기억한다. 더불어 남겨진 이들의 애끊는 슬픔까지도 우리는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잊기도 한다. 그날 사고가 있기 직전, 먼저 다리를 건넌 사람들이 다리가 이상하다고, 아무래도 무너질 것 같다고 신고를 거듭했지만 아무도 조처하지 않았다. 26년 전 그 소식은 뉴스를 통해 전해졌을 것이고 그 순간 우리는 모두 분노했겠지만 이제 그런 것들은 대부분 잊었다. 분노와 슬픔은 그 유통기한이 애초 다르다. 분노와 억울을 제대로 기억하는 건 유가족들 뿐일 테다. 그것들은 유가족의 가슴에 영영 사라지지 않는 멍으로 남아 그들의 삶을 벌레처럼 갉아먹겠지만 나머지는 잊겠지. 다 잊겠지.
세월호 6주기가 다가온다. 벌써 6년이라니.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허무맹랑한 뉴스를 봄날 아침, 거실에 앉아 하릴없이 쳐다만 보고 있었던 그때가 벌써 6년 전이라니. 이상하잖아, 저렇게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 저 아이들을 아무도 꺼내주지 못한다니. 우리는 끝없이 분노했고 억울했고 더할 수 없이 슬펐다. 뉴스를 끄고도 친구와 만나 와글와글 신나게 떠들 수 없었던 우울의 시기를 우리는 다 같이 지났다. 고작 6년밖에 지나지 않아 세월호는 아직 아물지 않은 피딱지다. EBS '호기심 딱지'를 제일 좋아하는 여섯 살 딸아이는 '호기심 딱지'의 등장인물들이 가르쳐준 것들을 내 앞에서 자랑하는데, "엄마, 피딱지는 함부로 떼면 안돼. 혈소판이 열심히 만든 거거든. 피딱지를 억지로 떼면 혈소판이 또 일을 해야 해. 피딱지를 만드느라 혈소판들이 죽었는데, 또 만들면 혈소판들이 또 죽어. 피딱지는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해. 알겠지?" 그렇게 내내 떠든다. 유가족들에게 그 피딱지야 저절로 떨어질 날이 있을까마는, 그 피딱지를 우리가 손댈 일은 아닌 거다. 선거를 앞두고 터져 나오는 세월호 막말에 가슴이 저린다. 슬픔만 기억하고 분노와 억울을 자꾸 잊어가는 이 무심함을 미안해하기는커녕 남의 생채기를 함부로 헤집고 피딱지를 마음대로 건드릴 거라면 이딴 선거, 왜 하는가 싶기도 하다.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