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탄은 차베스가 쏘았다. 1999년 베네수엘라에 차베스 정권이 들어섰다. 오일 머니를 잔뜩 손에 쥔 차베스는 '무상 정책'과 '공짜복지'를 마구 쏟아내며 베네수엘라는 물론이고 남미 국가 국민들까지 열광시켰다. 차베스 포퓰리즘은 마치 감염병 팬데믹(대유행)처럼 주변 국가로 빠르게 번져 나갔다. 그리고 2004년 우루과이 대선에서 중도좌파 바스케스가 당선됐다. 뉴욕타임스 남미지국장 래리 로터는 잇단 사회주의 성향 좌파정권의 등장을 '분홍 물결' 즉 '핑크 타이드(Pink Tide)'라고 명명했다. 공산주의 물결 ,'레드 타이드(Red Tide)'에 빗댄 것이다.
2014년까지 남미 12개국 중 무려 10개국에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혁명가 볼리바르 후계자를 자처한 차베스는 세계 최대 석유매장량을 앞세워 이들과 손잡고 강력한 '좌파벨트'를 구축해 미국과 맞섰다. '볼리바르식 사회주의와 아르헨티나 페론식 포퓰리즘의 결합'이란 그럴싸한 말이 이때 만들어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차베스의 죽음과 석유, 구리 등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돈줄이 마르자 '핑크 타이드'는 서서히 퇴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이러스처럼 소리 없이 퍼져나갔던 선심성 복지정책으로 경제는 거덜 나고 재정은 파탄 났다. 식량도 바닥났다. 그러자 민심이 돌아섰다. 그렇다고 좌파정권이 무너졌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녀노소,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공짜'에 한번 맛을 들이면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이처럼 포퓰리즘의 중독성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래서 중남미에선 지금도 살만하면 좌파가 득세하고, 살기 힘들면 우파가 들어서기를 반복한다.
이재명 지사가 도민 모두에게 긴급재난지원금 10만원을 지급한다고 발표한 이후 정부, 정치권, 지자체가 지원금 규모를 경쟁하듯 키우고 있다. 그 열기가 너무 뜨거워 마치 '포퓰리즘 팬데믹'을 연상시킨다. "돈이 없어 못 주겠다"며 마지막까지 버티던 남양주 조광한 시장의 행동이 경건하게 보일 정도다. 공돈을 주는데 싫다는 사람은 없다. 포퓰리즘은 인간의 그런 속성을 교묘히 파고든다.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무상보육, 아동수당 등을 없애고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걸 상상할 수 없는 것도 그래서다. 모두 포퓰리즘 바이러스에 감염된 탓이다. 우리라고 포퓰리즘에 골병이 든 남미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세상에 '공짜'란 없으니까.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