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 성리학 시작 한학자에 배움도
그의 이념은 '화이부동'과 잇닿아
개별국가 지향할 국제질서의 가치
'뉴노멀' 새로운 표준이 現 문명 대안
경제·군사력 아닌 문화의 힘에 초점

월요논단 홍기돈2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코로나19 대창궐로 전 세계가 두려움에 떠는 와중에 우리는 지난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1주년을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친일이 아니라 독립운동이 우리 역사의 주류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최근 들어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가운데 한 대목을 떠올리고 있던 터라, 그러한 내용의 기념사가 나에게는 퍽 시의 적절하게 느껴졌다.

일부 정치권과 언론이 비난을 쏟아내고 있지만 세계 각국에서는 코로나19의 모범적인 대응 사례로 우리나라를 꼽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장비와 자료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으며 도움을 거부했던 국가의 경우에는 사과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현재 진행형인 만큼 속단은 피해야겠으나 대한민국의 위상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사실은 인정할 만하지 않은가 싶다. 이러한 판단 속에서 떠올랐던 것이 김구 선생이 강조했던 문화의 힘이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하게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도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서 실현되기를 원한다."

김구 선생은 이러한 이념을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연결시키고 있는데, 내가 보건대 이는 천하의 평화를 기획하는 방법론 측면에서 성리학의 화이부동(和而不同)과 잇닿아 있는 듯하다. 기실 김구 선생은 여덟 살에 성리학 공부를 시작하여 17세에 과거에 응시한 바 있으며, 20세에는 한학자 고능선(高能善)에게 배움을 얻기도 하였다. 화이부동이란 무엇인가. 남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지만, 부화뇌동하여 무턱대고 한데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본래 공자가 군자의 덕목으로 제시한 바 있는 것을, 성리학에서는 개별국가들이 지향해야 할 국제질서의 가치로 다듬어 새롭게 내세웠다.

성리학에서 화이부동을 강조했던 까닭은 당대의 국제질서가 그만큼 어지러웠기 때문이다. 송의 북동 지역에는 거란의 요(遼, 907~1125)라든가 여진의 금(金, 1115~1234), 서쪽에는 탕구트의 서하(西夏, 1038~1227), 현 베트남 북부 지역에는 대월국(大越國, 1054~1804)이 자리잡고 있었다. 송은 이들 나라와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 했고 송의 지식인들로서는 이러한 현실을 넘어설 이념이 필요하였던 바 바로 그러한 이념이 화이부동이었다.

각각의 지역에는 나름의 전통과 역사·문화가 있고, 전통·문화·역사를 영위해온 종족이 있으니, 이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만 각 국가의 고유성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 다른 나라에 강요해서 획일화하려고 해서는 곤란하다는 것. 이로써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나뉘던 중화(中華)·오랑캐의 개념은 변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부터 중화는 화이부동의 국제질서 존중 속에서 자신의 문화를 풍성하게 가꾸는 국가를 가리키며, 오랑캐란 무력을 동반하여 화이부동의 질서를 깨뜨리는 국가를 멸시하는 표현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리학 이후의 유학을 그 전의 유학과 변별하여 굳이 신유학으로 규정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몽주의 다음과 같은 시편은 그러한 맥락을 전제해야만 이해가 가능해진다. "공자께서 필삭하신 의리가 정밀하니 눈 내리는 밤 푸른 불빛 아래 세밀히 음미하네. 일찍이 이 몸을 이끌고 중화에 나아갔는데 주변 사람들은 이를 모르고 이적(夷狄)에 산다고 말하는구나." 화이부동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었으니 정몽주가 발 딛고 선 그 자리는 바로 중화일 수 있었다.

요즘 뉴노멀(New Normal)이란 용어가 부상하고 있는데 새로운 표준이 현 문명의 대안으로서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경제력이나 군사력 따위가 아닌 문화의 힘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그러한 세계의 근원·목표·모범으로 자리매김하기가 김구 선생의 소원이었으리라 싶다.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