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늘 하나를 골라야 한다. 그래서 고뇌한다. 그렇다고 늘 옳은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실수를 더 많이 한다. 이데올로기로 고민했던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이명준은 남도 북도 아닌 제3국을 택했다. 그러나 결과는 비참했다. 타고르호를 타고 동지나해를 지나던 그는 푸른 바다를 향해 몸을 던졌다. 이명준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의 운명은 바뀌었을까.
'한 번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한다'는 광고 카피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인간의 '결정 장애'를 파고들어 성공했다. 하지만 인간이 선택 앞에서 주저주저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잘못된 선택의 대가가 너무도 가혹하기 때문이다. 광기의 히틀러를 선택한 독일 민족과 포퓰리즘의 달콤함을 뿌리치지 못하고 차베스에게 표를 던진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그 후 받은 고통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는 경우는 너무도 많다.
사회인류학자 비키 쿤겔은 저서 '본능의 경제학'에서 '사람은 본래 이성적 사고와 달리 비합리적 행동을 일삼는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미운 오리 새끼에게는 편안함을 느끼지만, 아름다운 백조에겐 위협감을 느끼며 똑똑하고 청렴하고 양심적인 사람보다 어눌하고 사람만 좋아 보이는 모자란 듯한 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는 것이다. 무작정 내 편일 것 같고, 왠지 나를 더 필요로 할 듯한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숱한 선택의 오류를 저지른다. 투표는 더하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선한 후보보다, 가시 돋친 말을 날리는 거친 말싸움에 능한 후보에 본능적으로 더 끌린다. 스스로 돈을 벌어 한 번도 세금을 내본 적이 없는 후보의 달콤한 말에 기꺼이 후한 점수를 준다. 그래서 기득권 세력을 향한 거침없는 공격에 사이다 같은 시원함을 느끼며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21대 총선 투표일이다. 내 손으로 민주주의를 수행하는 날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사실상 '깜깜이'로 치르는 선거지만, 우리 국민들은 역사의 고비때마다 언제나 현명한 선택을 했다. 선심 공세를 뿌리치고 긴 안목을 가진 정치인을 고르는 것은 유권자의 의무이자 권리다. 링컨 대통령은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며 그 중요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이런 투표를 포기해선 안 된다. 당장 투표장으로 가자.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