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말'(言)의 잔치다. 후보는 말을 하고 유권자는 그 말을 귀담아 듣는 게 선거운동의 필수 전제조건이다. 그 말을 듣도록 분위기를 띄우는 건 로고송과 율동이다. 이번 4·15총선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이러한 말의 전달과정이 많이 생략됐다. 로고송과 율동은커녕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후보들의 결기 어린 목소리조차 거의 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말은 넘쳐났다. TV부터 'SNS'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란 이름의 '대체재'(?) 덕분이다.
말을 뜻하는 한자어인 '言'은 고대 중국의 갑골문자다. 한자의 가장 오래된 형태를 보여주는 문자인 만큼 수많은 파생어를 낳았다. 그렇다면 '言'의 파생어 중 이번 4·15총선의 특징을 보여주는 글자나 단어는 무엇이 있을까.
먼저 '저이'(저異)란 단어를 꼽을 수 있겠다. '나와 생각이나 입장이 다른 사람을 헐뜯고 욕함'이란 뜻이다. 진영논리에 얽매여 죽기살기식으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한 이번 선거판과 딱 맞아 떨어진다. '사실이 아닌 일을 꾸며서 남을 해치는 말'을 뜻하는 '무'(誣)와 '거짓말로 속이고 위장하는 말'을 의미하는 '사'(詐)란 글자도 가짜뉴스 논란과 맞물려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 선거였다. '과'(誇· 허풍을 떨고 튀겨서 말함) 또는 '과공'(誇功·자신의 공로를 크게 떠벌림)은 지역 숙원사업이나 개발사업의 기여도 등을 둘러싸고 벌어진 후보들간의 마찰을 설명하는 듯하다. '사사'(詐詐·속임수를 써서 속임수를 속임)란 말에서는 자꾸 '위성정당'이 떠오른다. 그런가 하면 '미친 말을 마구 지껄임'이란 뜻의 '광'(광)이나 '헛된 말로 세상을 크게 속인다'는 뜻의 '광세'(광世)를 연상시키는 정당이 투표용지에 버젓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엿가락처럼 늘어난 48.1㎝의 투표용지가 말해주듯 비례대표 참여정당이 난립하면서 빚어진 결과다.
그러고 보니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말로 인해 오염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훈 작가는 한 산문집에서 "말의 더러움, 말의 비열함, 말의 사특함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번창했다"고 했다. 선거 또한 인간 역사의 한 단면이니 예외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 후보들이 내뱉은 말 중에 생산적인 공약이나 희망의 메시지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선거는 끝났다. 말의 잔치도 끝났다. 이제 당선자들의 언행일치(言行一致)에 주목할 때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