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개발 어려워 감염 두려움 더 커
문화예술계 '새로운 개념' 요구돼
온라인 갤러리등 다양한 기획 시도
'움직임의 일상' 준비할 공공기관
지원대상 누락없는 정책실행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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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약 두 달 동안 시계추처럼 집과 사무실을 오가는 정도의 움직임과 집 근처의 시장에서 음식물 등 생필품을 사기 위한 나들이 정도로 '사회적 거리두기', 좀 더 엄밀히 표현하자면 '물리적 거리두기'를 철저히 하고 있다. 요즘은 중앙공원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마다 마치 새롭게 배운 외국어를 말해보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산책 나온 강아지, 길고양이, 비둘기, 참새, 개나리, 철쭉 등에 인사를 건넨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달라진 일상이다.

알다시피 우리가 알고 있는 세균은 DNA, RNA를 모두 갖고 있으며, 스스로 생명 활동이 가능한 완전한 세포이자 생물이다. 이에 반해 바이러스는 단백질 외피가 유전물질 한 가닥을 싸고 있는 구조이며, 종류에 따라 DNA, RNA 둘 중 하나만 갖고 있고, 세포막이 없으며 숙주 내에 있을 때만 생명 활동이 가능하다. 바이러스는 세균과 달리 돌연변이가 나타날 수 있고 변이가 빨라서 백신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하니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최근의 공연이나 행사, 축제, 스포츠 등은 대규모 관중 또는 관람객이 함께 모여 공통의 관심사에 몰입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여행은 체험과 모험이 주는 힘을 강조하면서 국가를 넘나드는 관광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모여야 성공적이라는 등식은 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코로나19 이후 문화예술계는 규모와 경제적 편익과의 관계, 공연·축제 그리고 관광의 의미 및 가치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동시에 형식과 내용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생활방식의 변화를 체감하면서, 10년 뒤 우리는 놀랍게 바뀐 사회생활과 거리의 모습, 지금과 다른 방식의 사람과 사물에 관한 관심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까지 이루어왔던 만남·연결을 통한 상호이해, 현장이 주는 생생한 체험, 직접 보면서 느끼는 실물의 아우라 등을 느끼는 방식이 바뀔지도 모른다.

이반 일리치의 '텍스트의 포도밭에서' 내용 중에 중세의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책을 읽던 독특한 방법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수도사들은 하느님의 말씀이 적혀 있는 양피지로 된 책을 여럿이 모여 낭독하는데, 마치 농사꾼이 자신이 지은 포도밭의 잘 익은 포도를 한 알 한 알 음미하는 것처럼 책의 글자 하나하나를 소리 내어 읽으면서,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음악적 쾌감을 즐겼다고 한다. 코로나바19로 인해 공연장에서의 대규모 공연과 미술관의 전시, 강의실의 교육과 면대면 회의 등이 어려워지자 문화예술계는 '무관중 연주회', '온라인 갤러리', '제한적 관람', 야외에서의 '드라이브인 공연', '랜선공연(동화구연, 라이브 공연, 쇼케이스 발표 등)', 온라인 강의, 화상회의 등 접근이 가능한 다양한 기획을 시도하고 있다. 묵독의 방식이자 혼자서 겪는 체험으로서의 독서가 일반적인 요즘, 이반 일리치의 사례처럼 잊고 있었던 옛 방식의 하나인 '낭독'의 즐거움을 '랜선 동화구연'으로 되살려내기도 한다. 이런 시도는 불과 몇 개월 동안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팬데믹'을 대처하는 세계 각국의 모습을 통해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재난대비 '삶의 기술'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류사회에 갖가지 재앙과 질병을 퍼트린 판도라의 남편 '에피메테우스'를 비난만 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희망'은 '자연의 선량함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에서 우러나오며, 예측할 수 없기에 희망을 품고 뜻밖의 일이기에 놀람, 경이로움의 체험을 얻는다고 한다. 반면에 '기대'는 '인위적으로 계획하고, 통제한 것에 따른 결과에 대한 의존'을 뜻한다고 한다.

조만간 코로나19로 인한 '멈춤'에서 '움직임의 일상'을 준비해야 할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은 중장기적 계획과 더불어 당면한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 입안과 실행에 대한 '기대'를 요구받을 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시절이든 좋지 않은 시절이든 사회적 역할을 해왔던 예술단체, 예술가들이 '모든 사람'의 지원대상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문화정책·예술정책이 체계적으로 실행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품위와 상식, 인간의 존중과 미덕에 대한 '희망'과 함께.

/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