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동안 가장 힘든일중 하나
선비들이 목숨처럼 여긴 삶의 철학
다산 선생 독처무자기와 일맥상통
떳떳치 못하면 언젠가 허구드러나
스스로 낮추는 불변의 진리 실천을

홍승표 시인·전 경기관광공사 사장
홍승표 시인
'자신을 속이지 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이 너를 보고 있다. 열 사람의 눈이 너를 지켜보고 있다. 이 얼마나 무서운 현실이냐!'-증자(曾子)

자신을 속이지 말라(不欺自心)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남을 속일 때가 있지요. 선의든 악의든 옳은 일이 아닙니다. 잠시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지만, 자기 마음마저 속일 수는 없습니다. 남을 속이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자신을 속이는 일이지요. 마음을 속이는 건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갈고 닦을 필요가 있지요. 나를 돌아보는 게 불편하고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자신의 뒤를 돌아보며 성찰하며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삶의 철학과 가치를 지키며 보이든 보이지 않든 자신을 속이지 말고 살아야하는 게 상도(常道)이지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속이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조선의 선비들이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겼던 삶의 철학이지요.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속일 수 없습니다. 공자는 마지막까지 '민신(民信)'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했지요.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면 조직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다산(茶山) 선생이 오랜 유배 생활 속에서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도 독처무자기(獨處無自欺)의 철학을 지켰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삶 속에서 저술한 책들은 오늘에도 우리 삶의 나침판이자 길라잡이가 되고 있지요.

남을 속이고, 자신까지 속이면서 죄 짓는다는 생각은 손톱 만큼도 하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남들이 보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을 속이고 떳떳하지 못한 일을 저지르면 언젠가는 그 허구가 드러나게 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난해 그런 일을 겪었지요. 사회적 명성을 얻고 젊은이들의 존경을 받았던 사람의 민낯이 청문회를 거치면서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정승 자리에 올랐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결국 물러나고 말았지요. 안타까운 것은 나라가 내 편 네 편으로 갈리고 나뉘었다는 것입니다. 특권층의 꼼수를 알게 되었지만 진영논리로 편이 갈라진 건 안타까운 일이지요.

살다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접하게 됩니다. 속이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올곧은 철학과 소신이 없으면 안 됩니다. 욕심이 지나쳐 일을 그르치는 것은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인지 생각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이 세상엔 고수가 많이 있습니다. 때를 못 만나 능력과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살면서 스스로 깨우침이 넓고 깊어서 지위를 달 수 없을 만큼의 경지에 오른 참된 사람(無位眞人). 모든 미혹(迷惑)함과 깨달음을 초월한 사람이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요. 스스로 낮추면 높아지고 높이면 낮아진다는 불변의 진리부터 실천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지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 속에 사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혼자만의 생각은 중지(衆智)를 모으는 것보다는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 꺼풀 벗기면 가면을 쓰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나마 민낯으로 남을 속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면이라도 쓰는 게 사람다운 일이지요. 사후세계(死後世界)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요. 남을 속이지 않고 자신을 속이지 않는 세상이 천국이 아닐까 합니다. 저 역시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은 몰라도 자신까지 속이지 않는다는 건 자신이 없지요. 자신을 속이는 건지 아닌지 모를 때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홍승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