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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이어 또 한번 강남이 뜨고(?) 있다. 서울 강남갑 선거구에서 탈북자 출신의 태구민(태영호) 미래통합당 후보가 당선되면서부터다. 4·15 총선 다음날인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한 청원이 강남을 다시 주목받게 한 도화선이 됐다. '서울 강남구 재건축지역에 탈북자 새터민 아파트 의무비율로 법제화해 주세요'란 제목의 청원이다. 청원인은 "냉전시대의 수구적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넘어 태구민씨를 선택해 준 강남구민들의 높은 정치의식과 시대정신에 경의를 표한다"며 이같이 요구한 뒤 "강남구민들의 높은 정치의식을 기반으로 생각해볼 때 분명 반대는 적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강남 주민에 대한 경외감이 한없이 묻어나는 글이다. 하지만 액면 그대로 읽혀지지가 않는다. 오히려 태 후보를 국회로 보낸 것을 조롱하는 듯한 뉘앙스가 강하다. 청원인의 의도가 그렇다면 청원 의제는 기막힌 패러독스가 아닐 수 없다.

사실 국내에서 부동산 시세가 가장 높은 지역에 새터민 아파트를 의무화하라는 제안을 지역 부동산 자산가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안 봐도 뻔하다. 청원인이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터인데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은 강남 유권자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야유가 아닌가 싶다.

태 후보는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을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 종부세 부과 주택의 가격 기준을 현행 공시가격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 후보도 부동산규제완화를 약속했지만 여권의 부동산 정책을 못마땅해 하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 프레임이나 사상, 이방인에 대한 인식 등 선거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리라 예상했던 요소들이 '부동산'이란 현실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 셈이다. 청원 이후에 강남지역 아파트 브랜드를 북한식으로 희화화한 패러디가 유행하고 있는 것도 새터민 아파트 청원과 맥을 같이하지 않을까 싶다. '푸르디요', '인민이 편한 세상', '내래미안', '간나이파크' 등이다. 해당 청원은 22일 현재 13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서 우리 사회에 복잡 미묘한 화두를 던졌다. 싸이는 말춤을 추면서 이렇게 외친다. "나는 사나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그런 사나이". 사상이 울퉁불퉁하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곱씹어보는 요즘이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