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9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인사들과 함께 비행기 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를 하면서 고개와 허리를 숙이지 않았다. 턱 끝을 살짝 들어 올린 채 미소를 유지하는 표정을 2박 3일간의 방한 기간 내내 선보였다. 전문가들은 김여정이 의식적으로 자신이 한 조직의 우두머리임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알파 전략'을 쓴다고 지적했다. 오랜 시간 훈련됐거나 당당함을 표출하려는 의도된 전략이라는 것이다.
다음날 청와대를 방문한 김여정은 방명록에 '평양과 서울이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서 더 가까워지고 통일 번영의 미래가 앞당겨지기를 기대합니다.'는 글을 남겼는데, 가로 선의 기울기가 오른쪽으로 갈수록 가파르게 올라가는 독특한 문체가 화제가 됐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의 글씨체 모두 오른쪽 위 방향으로 기울어진 게 특징으로 그녀 역시 이 글씨체를 사용하면서 '백두혈통'임을 과시하는 듯했다. 특히 초성으로 쓰인 자음이 유독 컸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평범한 사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남들 위에 서 있다는 심리의 표출"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김여정은 고전적인 머리 모양에 수수한 옷차림의 짧은 방한 기간 중이었지만 우리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여정이 우리의 관심을 다시 끌게 된 건 지난 3월 3일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는 담화문이었다. 전날 단거리 발사체 발사에 강한 유감을 표명한 청와대에 대해 내놓은 담화문은 김여정 명의로 나온 것으로 그 내용이 충격이었다. "겁을 먹은 개가 더 요란하게 짖는다" "청와대의 행태가 세 살 난 아이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등 불쾌한 감정을 여과 없이 거칠게 드러내 우리를 놀라게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변 이상설이 12일째 계속되는 가운데 김여정이 북한 2인자의 자리를 굳혔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세계에서 최고로 고립된 폐쇄 국가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해도 확진자가 '0명'이라고 대외적으로 선전하는 나라다. 지금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김여정을 "애송이에 불과하다"고 하는 태구민 미래통합당 당선자도 있다. 자칫 외신보도만을 믿다가 낭패를 당하기 일쑤다. 북한 상황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