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사랑 듬뿍 받아
요즘엔 스키·야구 배트 등
운동기구 만드는데 이용
껍질 말려 해열·진통·소염제로도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이다. 하루가 다르게 숲은 연둣빛에서 초록빛으로 내달리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쳐있던 우리들의 기분을 전환하기에 숲만큼 좋은 장소도 없을 것 같다. 다가오는 연휴에는 나무들의 새잎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신비한 연둣빛 생명의 숲을 찾아가 마음껏 느끼고 즐겨보자. 저마다의 고유한 색과 향기로 숲을 채우는 나무들이 각별한 감동과 큰 기쁨으로 다가올 것이다.
숲속에도 도시에도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나무가 살고 있다. 그중에 물푸레나무는 이름만 들어도 높은 가을 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푸르름을 뽐내는 나무이며 또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면 싱그러운 잎사귀들이 춤을 추며 우리에게 달려올 것 같은 나무다.
물푸레나무는 물을 푸르게 하는 나무라는 뜻이다. 실제로 어린 가지의 껍질을 벗겨 맑은 물에 담그면 연한 파란색 물이 우러나기에 물푸레나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한자 이름은 수청목(水靑木) 또는 수정목(水精木)이라고 하며 나무껍질에 흰점이 얼룩져 있어서 백심목(白尋木)이라고도 한다.
물푸레나무는 벼루를 만들 정도로 재질이 단단해서 석단(石檀)이라고 부르며 돌벼루보다 가벼워서 선비들이 나들이에 즐겨 애용했다고 한다. 물푸레나무를 달인 물로 먹을 갈아 쓰면 오랫동안 보전된다고 알려져 있다. 재질이 강하고 탄성이 좋으며 잘 휘어진다. 그래서 일찌감치 베어 썼기에 고목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목재로서 우리 민족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특히 실생활에 쓰임새가 많아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리깨, 괭이나 호미 등 농기구의 자루로 가장 많이 쓰였음은 물론 맷돌 손잡이, 소의 코뚜레, 다듬이 방망이 등의 생활용품, 그리고 창의 자루까지 물푸레나무 가지로 만들었다. 또 눈이 많이 내리는 강원도에서는 물푸레나무 가지로 '설피'를 만들어 신었다. 물푸레나무 가지의 껍질을 벗기고 다듬어서 뜨거운 물에 넣고 타원형으로 휜 다음 피나무껍질로 동여매고 그 위에 짚신을 묶으면 눈에 빠지거나 잘 미끄러지지 않았다.
조선 예종 때에는 형조판서였던 강희맹이 상소를 올려 버드나무나 가죽나무 곤장이 때려도 아프지 않아 죄인들이 자백하지 않으니 물푸레나무로 바꾸어달라고 했을 정도로 물푸레나무는 탄력이 강하다. 그래서 회초리로도 많이 쓰였으며 오늘날에는 스키나 야구 배트, 하키 스틱 등 운동기구를 만드는 데 이용되고 있다. 나뭇결이 아주 뚜렷하며 곱고 화려한 무늬를 갖고 있어 소품이나 고급가구재, 인테리어 소재로 인기가 많은데 국내 한 가전업체의 최고급 브랜드의 냉장고나 공기청정기에도 북미산 물푸레나무를 사용하고 있다.
물푸레나무를 불태운 재는 물에 우려서 염료로 이용했는데 색이 바래지 않고 오래 가므로 예전에 스님들이 입는 청색이 도는 회색 승복을 염색하는 데 썼다.
물푸레나무는 물푸레나무과의 잎이 지는 넓은잎 큰키나무이다. 전국의 비옥하고 습기가 많은 계곡을 따라 비교적 높은 곳까지 자생하는 나무이지만 마을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잎은 잎줄기에 5∼7개의 작은 잎이 짝을 이뤄 달리고 끝에 한 개의 작은 잎이 달린 깃꼴겹잎으로 마주난다. 5월에 피는 꽃은 어린 가지의 잎겨드랑이에 연초록의 자잘한 꽃이 원추꽃차례로 무더기로 핀다. 가늘고 긴 날개가 달린 열매는 9월에 익으며 뿔이 달린 바이킹 투구 같은 회색빛 긴 겨울 눈을 가지고 있다. 회갈색 수피에 가로로 흰색 띠가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봄과 여름 사이 물푸레나무 껍질을 채취해 말린 것을 진피(秦皮)라 하는데 해열이나 진통, 건위제, 소염제로 사용했다. '동의보감'에는 충혈, 안질 등에 진피를 우려낸 물로 눈을 씻으면 효과가 크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눈 관련 질환을 치료하는 데 쓰였다. 물푸레나무 추출물은 특히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 활성산소로부터 피부를 보호해 주기에 수분크림 등 다양한 화장품에도 사용되고 있다.
/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기획전략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