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만 생각 당대표·원칙실종 공천
작은 균열에 둑 무너지듯 선거패배
재건 위해선 진정한 보수가치 정립
희망비전 국민공유 미래설계 급해

왜 보수와 수구가 동일시될까. 그 이유는 집권세력과 야권이 모두 제공했다. 현 집권세력의 제일 과제는 적폐청산이다. 적폐는 특권이며, 기득권이다. 지난 100여년 간 쌓인 것이다. 좌파가 보수를 '토착 왜구' 세력과 등치시킨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성공했다. 이제 보수는 친일파의 후손이다. 친일잔재는 청산 대상이다. 사법 적폐는 청산되었고 이제 검찰 차례다. 검찰의 조국 일가 수사는 공수처법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검찰의 저항이다. 조국 전 장관은 억울한 희생자이며, 그의 위선과 탈법은 문제 될 것이 없다.
보수와 수구의 동일화는 현 정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386 운동권이 사회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한 과정과도 일치한다. 좌파세력은 노조, 전교조, 각종 문화운동 등을 통해 헤게모니 싸움에서 승리했다.
야권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의 정치 행태는 실망을 넘어 혐오를 불러왔다. 자신들의 작은 이익을 보수로 포장했다. 야당 의원의 판단 기준은 자신의 당선 가능성이다, 선거 과정에서의 난맥상은 참담한 한편의 희극이었다. 당선과 대권 가능성만 생각하는 당 대표, 규율과 원칙은 완전히 실종되어버린 공천, 정체성이 불분명한 외부선대위원장 영입 등이 대표적이다. 압권은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 공약이었다. 보수의 원칙은 물론 품격마저 완전히 저버렸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명분과 체면을 완전히 내팽개친 몰락한 양반의 추태를 보는 듯했다.
야당은 재건을 시도 중이다. 패인과 대책이 다양하게 제시된다. '진정한 민의'를 받아들여 '뼈를 깎는 자성'과 '새로운 리더십'으로 '2년 후를 대비'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진정한' 보수의 원칙과 가치를 정립하는 일이다. 일부에서는 보수의 이념은 낡아서 새로운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이른바 실용주의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이념 없는 정당은 집권을 위해 모인 이익집단과 다를 바 없다. 이념으로 무장하고 편 가르기의 투쟁 전략과 선전선동 전술로 공격하는 집권정당에 대응하여 무원칙의 실용주의가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설령 전투에는 이길 수 있어도 전쟁에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현재의 정치 지형에서 보수의 재건은 쉽지 않다. 여당 대표가 말한 '진보 20년 집권'도 가능해 보인다. 보수의 궤멸은 사회주의를 부른다. 야당에 실망하면서도 기대를 버릴 수 없는 이유는 보수의 가치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진보의 이념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예컨대 보수주의자에게는 평등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자유도 소중하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통해 진정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분배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건전한 노동의 가치와 성실한 노력을 중시한다. 개인의 능력 차이와 취향의 다양성을 존중한다. 또한 인간의 양면성을 인정한다. 이타적 측면과 함께 이기적 속성도 부정하지 않는다, 이타적 속성만을 강조하는 정치집단의 이기적 속셈을 알고 있기 때문에 누가 양의 탈을 쓴 늑대인지를 간파한다. 지상에서 '인민의 낙원을 건설'한다는 거짓에 현혹되지 않는다. 도덕성은 좌우의 차이가 아닌 인간 개인의 문제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보수의 이념 정립이 시급하다. 올바른 원칙과 가치 위에 세워진 비전을 국민과 공유하여 희망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체성은 확립되고 진보의 문제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 연속되는 선거 패배의 충격은 크다. 그러나 눈앞의 단기적 이득에 급급해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우리의 선배들이 온갖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건설해온 대한민국을 후손들은 이어나가야 한다.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것도 보수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의 하나이다.
/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