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서 시작 '삶의 혁명'과정 이해
정부, 경제·정치적 '무능력' 딛고
코로나19로부터 국민 생명 지켜내
생존이 척도라는 새 세계체제 서막

세월호 참사로부터 코로나19까지. 나는 이것을 '삶의 혁명'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배에 갇힌 아이들의 꽃다운 생명이 국가의 음모, 또는 무능력으로 인해 사태 지듯 스러졌을 때 우리들은 도대체 국가란, 정부란 무엇이냐, 무엇이어야 하느냐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지난 정부의 일대 몰락이 시작되었다. 국민의 생명을 저버리는 국가란 어떤 정치적, 경제적 명분을 내세워도 용납될 수 없음을, 세월호 참사로부터 '촛불혁명'까지의 일들은 크게 말해 주었다.
정부가 바뀌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듯한 사건들이 줄을 이은 적도 있었다. 때문에 이번 선거는 정부, 여당에 그렇게 좋지 못하리라고들 했다. 무엇이 이 상황을 바꾸어 놓았던가? 바로 코로나 집단 감염 사태였다. 마치 1980년에 광주가 모든 '정치혁명'의 진원지가 되었듯이 이번에는 대구가 '뜻하지 않게' '삶의 혁명'의 실험 무대로 소환되었다. 대규모 감염, 확진자 급증, 신천지 교회, 의료 체계 붕괴 위기 속에서 정부, 여당은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던 비판 여론에 떠밀려 가버릴 듯했다.
한 달 '코로나 정국'이 전개되는 사이에 모든 것이 급전되어 버렸다. 중국인들 입국을 금지하지 않아 이 야단이 났다고 야당들이 비난을 가하는 사이에 질병본부와 지자체장들, 그리고 정부는 용케도 확진자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막아냈다. 뒤이어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미국, 독일…. 급기야 일본으로까지 코로나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사이에, 뜻밖에도 한국이 방역 시스템 면에서 그들을 훌쩍 능가할 만큼 '선진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모든 경제적, 정치적 '무능력'을 딛고 현 정부는 '갑작스레'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최저임금 '사태'로 인한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어려움, 법무장관 임명을 둘러싼 모든 이해할 수 없는 과정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냈다. 뒤이어 생존의 위기에 몰린 소상공인과 실업자들, 중산층, 하층 국민들을 원조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줄을 이었다. 사태가 워낙 급박했기에, 국민들 모두가 생활의 작동이 정지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피부로 절감하고 있었기에, 아니, 코로나19보다 이 '정지' 사태가 사람들을 더 먼저 질식시킬지도 몰랐기에, 포퓰리즘이라는 비난도, 근시안에, 퍼주기식 물량공세라는 비판도, 선거용이라는 힐난도 모두 배부른 소리로 들리기 쉬웠다. 코로나 사태가 사람들을 삶의 최저한으로 내몰고 있었기에, 정치는 더 이상 통상적인 경제 문제를 다루는 기술에 머물러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삶의 정치, 생존을 위한 정치가 되어야 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시작된 '삶의 혁명', 그러니까 통상적인, 있어왔던, 낡은 제도상의 정치나 경제보다 삶이, 생존이, 인간적 생명의 최저한이 모든 것의 새로운 척도가 되어야 함을 코로나19, '세계어'로 '코비드 19' 사태는 말해 주었다. 트럼프의 과장 섞인 '허세'도, 아베의 '혐한' 편승 정치술도, '코비드 19'는 그 부끄러운 본색을 벗겨내고 말았다. 만년 선진 열강이라고 믿어지던 서구 제국들이 얼마나 낡았는지, 섬세하고 꼼꼼하다고 '자랑질' 하던 일본이 얼마나 뒤졌는지 '코비드 19'는 알게 해주었다.
나는 지금 현 정부를 지지하고 있는 게 '아니다'. AD, 즉 'anno domini'처럼 이 시대는 'anno covid-19', 새로운 원년이자, '포스트콜로니얼'을 넘어선 새로운 세계체제의 서막이다. 우리의 감각, 정서, 인식이 이 생명의 원리를 따라 구각, 그 낡은 껍질을 벗어버려야 한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