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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코로나19 사태는 31번 확진자 발생 전후로 완전히 양상이 달라졌다. 1월 20일 첫 확진자 발생 이후 2월 16일 30번 확진자 발생할 때까지 코로나19는 폐쇄국가 중국에 국한된 감염병이란 인식이 강했다. 의사협회 등 전문가 집단이 중국에 대한 국경봉쇄를 강조해도, 정부가 바이러스 발생지 후베이성만 봉쇄한 것도 미미한 확진자 발생빈도에서 비롯된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방역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정세균 총리는 2월 13일 신촌 일대 상가를 마스크 없이 돌면서 상점 주인들에게 "그동안 돈 많이 벌어 놓은 걸로 버텨야지", "손님이 적으시니 편하시겠다"고 농담을 건넸다 비난을 샀다. 부적절한 농담이었지만, 코로나 조기 종식에 대한 자신감은 그만큼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월 18일 대구 첫 확진자인 31번 확진자가 발생했고, 신천지교회가 등장했고, 세상이 완전히 변했다.

신천지교회 교인 1만여명을 전수조사하자 1주일만에 확진자가 1천명 대에 진입했고, 2주 뒤엔 5천명을 돌파했다. 방역매뉴얼이 없는 상태에서 경증환자가 음압병실에 입원하고, 중증환자가 입원대기 중 집에서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대구는 한국의 우한이 됐다. 세계 각국이 한국에 국경을 닫았고, 중국의 각 성(省)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스크 대란에 정부는 우왕좌왕했다. 소상공인은 가게 문을 닫고, 경제는 마비됐다.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원하는 전대미문의 위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31번 확진자는 코로나 대재앙의 소용돌이 한 복판에 서 있었다. 대구 신천지교회 집단감염의 슈퍼전파자로 의심받았다. 병원의 검진 권고에도 불구하고 교회 등 다중집합시설을 방문한 데다 동선을 숨긴 행위는 도마에 올랐다. 본인은 보건소에서 검진을 거부당했다고 항변했지만 반향은 적었다. 그녀가 입원 67일만인 지난 24일 완치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하지만 그녀의 감염경로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신천지교회 내부가 의심되지만 추측에 머문다.

다만 당국이 국경 검역이 느슨했던 시기에 코로나19가 은밀하게 확산된 건 분명해 보인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과 미국 등 국경봉쇄가 느슨했던 국가들의 팬데믹 참상은 목불인견이다. 31번 확진자도 소홀했던 초기방역의 피해자일지 모른다. 나라도 못 막은 역병이다. 그녀의 책임을 계속 따져야 할지 의문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