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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법 전경. /경인일보DB

'그 남자는 왜 차량으로 친 행인을 싣고 자신의 집으로 갔을까.'

지난해 11월 8일 오전 12시 56분께 인천 중구 제2경인고속도로 종점에서 연안부두 쪽으로 차량을 몰던 A(47)씨는 횡단보도 부근에서 도로를 건너던 B(50)씨를 자동차 앞범퍼로 들이받았다. 차량에 치인 B씨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교통사고를 내 사람을 다치게 한 운전자는 즉시 정차해 신고하거나 병원으로 옮기는 등 필요한 구호조치를 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 하지만 A씨는 의식이 없는 B씨를 차량 뒷좌석에 싣고 사고 장소에서 약 27㎞ 떨어진 경기도 김포의 자택으로 옮겼다. A씨는 집에 있던 아내를 불렀다. 그리고는 "당신이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낸 것처럼 진술해 달라"며 허위로 자백하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지 30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A씨는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긴 채 다시 사고 현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곳에서 신고해야 거짓말이 의심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A씨의 차량은 사고 현장에 당도하기 전 고장으로 멈춰버렸다. A씨는 할 수 없이 오전 2시 13분께 차량이 멈춘 지점에서 사고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치료도 받지 못한 채 1시간 10분 동안이나 차량 뒷좌석에 방치돼 있던 B씨는 우측 골반이 부러지는 등 전치 10주 진단을 받는 중상을 입었다.

A씨와 그의 아내는 경찰서에 와서 조사를 받을 때도 "아내가 운전하다 사고를 냈다"고 거짓말했지만, A씨의 차량 네비게이션 등을 통해 곧 덜미를 잡혔다. A씨가 사고로 정신을 잃은 피해자를 자신의 집까지 옮겼다가, 아내를 불러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야 했던 이유는 예상대로 그의 '음주운전' 때문이었다.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표극창)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 유기도주치상, 범인도피교사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음주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일으킨 후 피해자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음을 알았을 것임에도 범행 사실을 은폐할 목적으로 피해자를 자동차에 태우고 주거지로 이동했다"며 "배우자에게 허위진술을 부탁한 다음 배우자를 태우고 다시 사고 현장 부근으로 돌아오려고 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로 인해 피해자에 대한 구호가 1시간 이상 늦어졌고, 피해자의 건강상태는 더욱 위중해졌다"면서도 "피고인이 뒤늦게나마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고 잘못을 뉘우친 점, 피해자와 합의해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는 점 등은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