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읽히지 않으면서도
근대 인류사회 가장 큰 영향력
국내 다섯 차례나 번역돼
더 좋은 사회를 위한
영감·성찰 기회 제공해줘

전문가 조성면2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
고전의 또 다른 면모는 안 읽었거나 잘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오히려 안 읽었거나 읽히지 않았기에 고전으로 살아남아 끝없이 읽기의 욕망을 부추기면서 독서 대상으로서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1818~1883)의 '자본론'(1867)도 안 읽히는 고전의 하나다. 독서는커녕 소지하는 것 자체를 불온시하는 무시무시한 이념적 억압과 자기검열로 인해 또는 그 난해함으로 '자본론'은 읽히지 않으면서도 정작 근대 인류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금단의 사과였다. 근·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책이면서도 읽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놀랍다.

나 역시 읽어야지 하면서 '자본론'의 언저리와 문턱만을 오가던 '자본론'의 '양기치 소년'이었다. 대학생 때 미야카와 미노루(宮川實)의 '자본론'의 대중적 해설판인 '경제원론'(1985)과 나오자마자 금서가 된 '자본론 해설'(1986) 복사본을 일독해본 게 전부다. 이듬해 1987년 도서출판 이론과실천에서 나온 '자본론 1-1'의 일부를 들춰본 걸 평생의 위안으로 삼고 있었는바, 상품과 잉여가치 창출의 비밀을 밝히고 있는 확대 재생산 도식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그냥 외워버렸던 기억은 지금도 새롭다.

한국에서 '자본론'(Das Kapital을 '자본론'이라 번역하는 것은 일본식이라 하여 요즘은 '자본'으로 번역하기도 한다)이 처음으로 번역된 것은 1947년이다. 1993년 제대하고 박사과정에 갓 입학했을 무렵 청계천의 어느 헌책방에서 1947년에 나온 서울출판사 초판본을 구입했다.

'자본론'은 1867년에 제1권이 출판된 뒤 마르크스의 사후 엥겔스에 의해 제2권이 1885년에, 제3권은 1894년에 나왔다. 서울출판사 판본은 최영철·전석담·허동의 공역으로 역자들은 일본의 개조사판과 독일의 아도라츠키판 등을 저본으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다. '자본론'은 모두 3권(카우츠키의 잉여가치론까지 포함하면 4권)인데, 내가 입수한 것은 서울출판사본 제1권, 2권뿐인지라 이제까지 낙질본을 산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장시복 교수의 논문(2016)을 보고 서울출판사본이 완역본이 아니라 2권만 번역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 '자본론'은 모두 다섯 차례 번역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서울출판사(1947)·이론과실천사(1987)·비봉출판사(김수행, 1989~1992)·백의(1989)·길(강신준, 2010) 등이 그것이다. 그러면 잘 읽히지도 않고, 소지하고 있는 것조차 금기시됐던 이 책이 판을 거듭해서 출판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우리 사회가 이제 그 어떤 책이라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개방되어 있고 자유롭다는 뜻도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론'이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밝힌 역작이긴 하나 산업자본주의 시대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19세기 서적이고 또 요즘처럼 플랫폼 노동·AI·로봇 등 노동이 추상화하고 기술이 고도화한 시대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고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 더 좋은 자본주의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끝없는 영감과 반성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직장인이 되다 보니 신문과 소설책 한 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사는 처지라 한동안 더 '자본론'의 양치기 소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문득 독서하는 삶을 보장해주기 위해 국민을 대상으로 리딩 위크(reading week) 같은 휴일을 법제화하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