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보다 평온' 청자 위로 엔딩곡
심장병으로 2019년 11월 말에 타계한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의 마지막 무대는 같은 달 초에 있었던 뉴욕 카네기홀이었다.
당시 얀손스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BRSO)과 R.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브람스 '교향곡 4번', 앙코르로 브람스 '헝가리 춤곡 5번'을 연주했다.
이튿날에도 같은 무대에서 지휘할 예정이었으나, 건강 악화로 바실리 페트렌코가 대신 포디엄에 섰다. 뉴욕에서의 연주는 얀손스의 '백조의 노래'가 됐다.
이 연주 후 한 달이 채 안 돼 얀손스가 세상을 떠나자 BRSO 단원들은 "연주 내내 다리가 휘청거리고 팔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지휘하는 듯했다"고 거장의 마지막 연주를 떠올렸다.
백조는 죽기 직전에 노래한다는 북유럽 전설에서 유래한 '백조의 노래'는 작가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지은 시가나 가곡 따위를 일컫는다.
슈베르트의 3대 가곡집 중 하나로, 작곡가 사후에 14곡의 가곡을 한데 모아 간행된 가곡집이 '백조의 노래'로 명명된 바 있다. 시대를 풍미한 연주자들에겐 인상깊은 '백조의 노래'가 있다.
20세기 거장들의 마지막 연주는 음반을 통해서도 접할 수 있다. 최후의 투혼이 녹아있는 이들 연주는 들을 때마다 심장을 뛰게 만든다.
'브루크너의 화신'으로 불리는 독일 지휘자 오이겐 요훔은 85세였던 1987년 1월 뮌헨 필하모닉을 이끌고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지휘했다.
24세의 젊은 나이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뮌헨 필과 연주해 데뷔했던 요훔은 말년에 다시 뮌헨에서 브루크너의 마지막 교향곡을 연주한 것이다.
마지막 아다지오 악장의 거룩한 고양과 잦아드는 신비감까지, 이전 연주들을 뛰어넘은 요훔은 2개월 뒤 세상을 떠났다.
체코 출신의 마에스트로 바츨라프 노이만은 체코 필하모닉과 1990년대 들어서 자신의 세 번째 말러 교향곡 전집에 도전했다. 교향곡 1번부터 6번까지 레코딩한 뒤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에서 1995년 75세의 거장은 예정에 없던 '교향곡 9번'의 연주를 강력히 희망했다.
노이만은 녹음을 끝마친 날로부터 나흘 뒤 타계했다. 절제된 감정 속에 초월적 악상을 남기고서 말이다.
요훔과 노이만이 택한 '백조의 노래'는 모두 마지막에서 고요하게 사라져 간다. 그러나 슬픔보다는 평온이 자리해 있다. 마치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청자를 위로하는 듯하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