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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대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던 김학순입니다. 신문에 나고 뉴스에 나오는 걸 보고 내가 결심을 단단하게 했어요. (일본이) 도대체 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오. 그래서 내가 나오게 되었소.…나올 때 좀 무서웠어요. 죽어도 한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은 꼭 하고야 말 거요. "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기억연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은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의 연쇄증언으로 이어졌고, 전 세계에 일본 정부의 반인권적 범죄행위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듬해 1월 8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 등을 요구하는 첫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는 '수요집회'라는 이름으로 지난 6일까지 1천438회 열렸다. 수요집회의 정식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다. 할머니들은 학생, 시민과 함께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면서 한 번도 빠짐 없이 수요집회를 열었다. 지금도 수요 집회가 열리는 날, 일본대사관은 스무 개가 넘는 창문의 모든 커튼을 내린다.

2011년 12월 1천회를 맞은 수요집회 때 일본대사관 앞에 한복을 입은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소녀상에는 이제 할머니가 된 피해자들의 가슴 속에 여전히 꿈 많은 소녀가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설치된 다음 날, 누군가 소녀상에 목도리를 감싸주면서 국민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이후 소녀상은 전국 아니 전 세계 곳곳에 세워지면서 평화와 인권, '반일(反日)'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며 수요집회의 상징인 이용수(92) 할머니가 "수요집회는 증오와 상처만 가르친다. 수요집회를 없애야 한다"는 충격발언을 했다. "30년간 속을 만큼 속았고 이용당할 만큼 당했다"는 말도 이어졌다. 정의기억연대 등 위안부 관련 단체와 이번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파문은 일파만파다. 시민단체에선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다. 하루빨리 정부가 나서 원인을 규명하고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흐지부지 넘길 일도 아니다. 방관하면 사태는 더 커질 것이다. 30년간 이어진 수요집회의 신화가 무너질까 벌써 두렵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