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점은 낙인없이 빈곤 해소에 도움
문제는 지출 커 기존복지 병행 애로
도움 급한 노약·실업자에 불평등
저소득층에만 적용하는게 더 낫다

기본소득의 장점으로 거론되는 것은 여러 가지다. 우선 빈곤 해소에 도움이 된다. 자격을 따지지 않아 낙인효과가 없다. 생계에 덜 얽매이게 돼서 보수가 적어도 맘에 드는 일을 선택할 수 있다.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충격을 줄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복지제도를 기본소득제로 통일하면 행정비용이 감소한다. 진보진영만이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시장 개입을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급진적 자유주의자 중에도 기본소득 지지자가 꽤 있다. 다양한 복지제도를 운영하면 행정적 낭비가 극심하므로 기본소득제가 더 낫다는 것이다. 반면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진보적 경제학자도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없다. 케냐에서 일부 마을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 중이고, 핀란드에서는 2017년부터 2년간 실업자 2천명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제를 실험했다. 핀란드 실험은 큰 관심을 모았으나 실패했다는 지적이 많다. 기존 제도에 따르면 취업 시 실업수당을 못 받으므로 취업 욕구가 줄어든다. 실험대상 2천명에게는 기본소득을 주면서도 취업 시 실업수당을 그대로 받을 수 있게 해서 활발한 취업 활동을 기대했다. 하지만 효과가 거의 없어서 핀란드 주요 정당들은 기본소득에 관한 관심을 접었다.
기본소득의 문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돈이 많이 들거나 푼돈 지원에 그치게 된다는 점이다. 기초생활수급비와 유사한 40만원을 매달 5천만명에게 지급한다고 하자. 연간 240조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국가 예산의 절반 가까운 수준이고 GDP의 약 12.5%다. 단계적으로 접근해도 기존 복지제도에 필요한 지출 역시 증가 추세에 있으므로 여타 복지제도와 병행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10만원 정도의 소액을 지급하면 어떨까? 기본소득에서 '기본'은 기초적인 생활이 가능한 수준을 뜻한다. 푼돈 지급은 기본소득의 정의에 어긋난다.
기존 복지제도와 기본소득제 병행이 비현실적이므로 기본소득제를 시행하려면 다른 복지제도를 폐지하거나 크게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런 방안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처지를 더 어렵게 만든다. 타 복지제도를 없애고 기초생활수급비 정도의 기본소득을 전 국민에게 지급한다고 하자. 기초생활수급자보다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소득이 더 증가한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지만 도움이 필요한 고령자, 장애인, 아동, 실업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다른 복지제도를 대체하는 기본소득제는 불평등을 오히려 심화시킨다. 그렇지 않은, 즉 기존 복지제도와 병행하는 기본소득제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실현 불가능하거나 푼돈 주고 표를 사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다양한 복지제도와 함께 저소득층에게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제도가 훨씬 낫다. 기본적인 소득 수준을 정하고 이에 미달하는 차액을 지급하는 보장적 기본소득(Guaranteed Basic Income, GBI)이 보편적 기본소득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제도다. 우리나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보장적 기본소득제도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애고 기초생활수급비를 인상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OECD 국가의 사회적 지출(넓은 의미의 복지지출)은 GDP 대비 평균 20%를 약간 넘는다. 우리나라의 거의 두 배다. 이 통계는 한국의 복지 수준이 아직 크게 미흡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갈 길이 먼데 엉뚱한 길로 가면 안 된다. 그런데 보편적 기본소득이 표를 얻기에 더 쉬워 걱정이다.
/허동훈 인천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