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501000625500030242.jpg
남인천중고등학교 2학년 4반 학생 김모(72)씨가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작성한 메모장.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늦깎이 중학생들의 식지 않는 열정은 코로나19도 막을 순 없었다. 50대부터 70대까지의 학생들은 "하루빨리 학교에 가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3일 인천 연수구청 한마음광장에선 20대 교사가 5명의 만학도들에게 학습 과제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국어, 영어, 수학부터 중국어, 음악, 체육까지 다양한 과목 과제물이 A4 15장에 담겨있었다. 이들은 남인천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코로나19에 따른 온라인 수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교사들이 직접 학습 과제물을 전달하기로 한 것이다.

학생들은 마스크를 쓰고 2m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학습 과제물을 꼼꼼히 읽었다. 이들은 오랜만에 본 같은 반 친구들과 조심스레 대화를 주고받았다.

2020051501000625500030244.jpg
지난 13일 남동구 간석자유시장 인근 공원에서 남인천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학습 과제물을 받기 위해 모였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중학교 과정 2학년 학생 김모(72)씨는 "개학일이 연기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상심이 컸지만 이렇게 과제물을 받으러 와서 친구들, 선생님을 보니 좋다"며 "어린 시절 제대로 학교 다니지 못했던 서러움이 커 입학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지각, 결석한 적 없을 정도"라고 했다.

김씨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영어다. 지난 학기 B등급을 받는 성과를 냈다. 그는 주머니에서 영어 단어가 빼곡히 적힌 손바닥 크기의 메모지를 꺼내 보여줬다. 검은색 사인펜으로 'Dream', 'Robot', 'Homework'라고 쓴 영어 단어 옆에는 한글로 '꿈', '로봇', '숙제'라고 적혀있었다. 자꾸 까먹는 단어는 연두색 형광펜으로 밑줄을 쳐놨다고 했다. 김씨는 'Go to school'이라고 쓴 문장을 가리키며 "나도 하루빨리 고 투 스쿨 하고 싶다"고 말했다.

2020051501000625500030243.jpg
지난 13일 남동구 간석자유시장 인근 공원에서 남인천중고등학교 교사가 학생에게 학습 과제물을 전달했다./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같은 학년에 다니는 학생 하모(62)씨는 "매일 아침 휴대폰 메시지로 출석체크를 하는데, 이걸 위해 새벽 5시 30분부터 일어나서 기다린다"며 "오전 6시가 되면 다들 경쟁하듯 출석 메시지를 보내는 데 열정이 대단하다"고 했다. 그는 카카오톡 대화창을 보여주며 "1등 출석을 놓치지 않는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동급생 이모(54)씨는 "예전엔 TV 예능을 보다가 'ing'라는 자막이 나오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학교에서 배운 뒤 진행 중이라는 뜻을 안다"며 "송도엔 영어로 된 곳이 많아 매번 약속 장소를 찾지 못해 헤맸지만 이젠 어디든 다 갈 수 있다"고 했다. 이씨는 학교를 다닌 이후부터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말을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남편이 매번 성적표를 검사한다"며 "이번에 개학하면 바로 시험을 칠 텐데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손수 만든 마스크와 위생 물품을 가져온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중학교 과정 2학년 4반의 반장 임모(62)씨는 손수 제작한 면 마스크를 선생님에게 전해주고 직접 산 라텍스 장갑 100매를 부반장에게 전달했다. 개학일에 같은 반 친구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다.

임씨는 "코로나 이후 한 반 인원을 반으로 나눠 각자 다른 요일에 수업을 진행한다. 못 만나는 친구들에게 줄 위생용품을 미리 챙겨온 것"이라며 "개학이 연기돼 아쉽지만, 재학생인 우리보다 신입생들은 한창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야 할 시기에 학교도 못 오고 상심이 클 것"이라고 걱정했다.

학습 과제물 전달은 이날 남동구 간석자유시장 인근 공원에서도 진행됐다. 이곳에서 과제물을 전달받은 중학교 과정 1학년 이모(67)씨는 "처음엔 새로운 걸 배우는 데 두려움이 컸는데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들도 만나 용기를 얻었다"며 "남편이 전기 인력사무실을 하는데 둘 다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른다. 열심히 배워서 내가 하나하나 알려줄 것"이라고 했다.

2020051501000625500030241.jpg
남인천중고등학교 2학년 4반 학생 김모(72)씨가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작성한 메모장.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남인천중고교는 성인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기관이다. 학교는 교육청의 온라인 개학 방침에 따라 학교 홈페이지에 학습 자료를 올렸으나 청소년과 달리 성인들은 온라인 시스템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달 9일부터 3차례에 걸쳐 집과 야외에서 학생들을 만나 과제물을 배부했다. 현재 중학교는 1학년, 2학년 과정으로 각각 247명, 182명으로 구성됐다.

송미진 교육홍보부장은 "학생들 중 인터넷을 이용하기 어려운 60대 이상 어르신들이 많아 직접 학습 자료를 전달하기로 했다"며 "학생들과 교사 모두 안전 수칙을 철저히 준수한 상태에서 만나고 있다"고 했다.

윤국진 남인천중고등학교장은 "학생들이 선생님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개학 연기로 인한 아쉬움을 달랬길 바란다"며 "오래 기다린 만큼 개학 이후 더 행복한 학교 생활을 하셨으면 한다"고 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