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도심에서 마주치기 어렵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잠자리는 지천에 널린 곤충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방학숙제였던 곤충채집의 단골 표본도 잠자리였다.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잠자리/아마 나는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싶지."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히트한 이유도 잠자리를 통해 어머니를 엄마로 불렀던 아스라한 유년의 기억을 소환하는 매력 때문일 게다.
한자로 젊은 처녀, 청낭자(靑娘子)인 잠자리를, 동의보감은 탁월한 정력제로 추천하고 있다. 여색을 밝힌 연산군이 즐겨 먹었다니 터무니 없는 처방은 아닌 모양이다. 여인의 고운 옷 맵시를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일 정도로 잠자리 날개는 투명하고 연약하다. 잠자리는 그 연약한 네 개의 날개를 따로 움직여 최고의 비행술을 자랑한다. 급선회, 급강하, 급상승은 물론 후진비행도 가능하다. 시 '청령(잠자리)'에서 이상은 "몸과나래도가벼운듯이잠자리가活動입니다./헌데그것은果然날고있는걸까요"라고 했다. 시적 은유와는 별개로, 잠자리의 호버링(제자리 비행)에서 착상한 작품이지 싶다. 헬리콥터를 잠자리 비행기라고 했으니, 잠자리가 불쾌했겠다.
잠자리는 모기의 천적으로 대표적인 익충이다. 모기라면 유충이건 성충이건 가리지 않고 포식하는데, 왕잠자리 성충은 하루에 수백마리의 모기를 먹어치운다고 한다. 여름철 잠자리떼가 비행 중이면 모기 박멸 작전 중이니 방해하면 안된다.
잠자리 하면 보통 고추잠자리를 생각하지만 한반도에만 총 11과 58속 123종이나 분포한다. (우포잠자리나라 참조) 아직도 방학숙제를 감당할 정도의 개체수는 유지 중이지만, 드물게 멸종위기종도 있다. 최근 시흥 보통천과 갯골 유역에서 환경부가 지정한 2급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대모잠자리 유충과 성충이 동시에 발견됐다고 한다. 국내서식 곤충류 1만8천여종 중 멸종위기 야생생물은 26종 뿐이다. 대모잠자리 서식지 보호를 위한 시흥시와 경기도의 대책이 시급하다. "아이들 잠자리채에 대모잠자리가 잡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이용성 환경교육센터 소장의 호소는 당연하다. 아울러 수원청개구리, 금개구리, 저어새 등 멸종위기 생물들의 서식지로 확인된 시흥지역 습지 전체에 대한 보호 청사진 마련도 시급해 보인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