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실한 중소 중견기업들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회사를 매각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영권까지 상속할 경우 할증세율이 더해 최고 65%에 달하는 상속세는 기업들에 너무 큰 부담이다. 가령 100억원짜리 기업을 상속받을 경우 최고 65억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이는 프랑스의 11.25%, 독일의 4.5%, 벨기에의 3.5%보다 턱없이 높은 수준이다. 물론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는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있다. 문제는 회사 경영을 심각하게 간섭받을 정도로 조건이 까다로울뿐더러, 이 제도를 활용하면 업종 전환을 할 수 없는 제약이 있다는 게 문제다.
상속세 폭탄 때문에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창업주들은 가업을 물려줄 것인지, 매각할 것인지를 두고 늘 고민한다. 대만처럼 중소기업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세계 최고 기술을 보유한 중견기업들이 인수합병 (M&A)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가령 종묘업체 농우바이오나 밀폐용기 국내 1위였던 락앤락, 세계 콘돔시장의 40%를 점유했던 유니더스, 중견 가구업체 까사미아 등도 상속세 폭탄을 피하지 못해 경영승계의 뜻을 접고 모두 매각된 경우다.
최초의 근대식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삼국·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과 285호 '금동보살입상'이 경매에 나왔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문화계가 술렁이고 있다. 1938년 서울 성북동에 보화각 (간송미술관 전신)이 문을 연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 문화계가 받은 충격은 너무도 크다. 보물급 문화재가 경매에 나온 이유가 지난 2018년 간송 전형필의 장남 전성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이 타계하면서 자손들에게 부과된 거액의 상속세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파문은 일파만파다.
현재 간송미술관은 훈민정음 해례본과 동국정운 등 국보 12점을 비롯해 보물급 유물 5천여점을 보유하고 있다.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을 때 막대한 개인재산을 털어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을 막은 이가 간송 전형필이다. 간송가(家)를 가리켜 '민족문화의 수호신'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속세 폭탄에 소장품을 경매로 내놔야 하는 간송가에 대해 오죽했으면 저럴까 하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우리의 걱정은 간송 소장품 경매가 이번에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