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취임사 역대 최고라고 생각한다
문장마다 감동 '특권·반칙없는…'에선 열광
취임 3주년… 총선 압승·60% 지지율 불구
과거와 다른 연설·상황… 약속은 지켜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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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주필
역대 대통령 취임사 중 최고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꼽는다. 문장 하나하나가 살아 숨을 쉬는 것처럼 꿈틀거린다. 글에서 풍기는 진정성은 가슴을 파랗게 적실 정도로 신선하다. 어쩌면 이런 좋은 말만 골랐는지 감동 그 자체다. 가슴에서 우러러 나온, 고뇌하는 대통령의 취임사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라는 대목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59%의 국민도 받들어 모시며 국정에 매진하겠다는 대통령의 넓은 포용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문 대통령을 뽑지 않았지만, 이 대목에 크게 감동했다는 이들이 꽤 많다. 취임식 날 저녁, "문구 하나하나에 진정성이 느껴져 감동한 나머지 취임사 읽고 밤새 펑펑 울었다"는 친구의 SNS 메시지를 받은 기억이 난다.

많은 이들이 대통령의 취임사를 읽고 또 읽는다. 내 경우도 그렇다. 읽을 때마다 감동이 화수분처럼 솟는다. 술 한잔 걸치면 감동은 배가된다. 고통과 회한으로 점철된 40년 정치사를 관통했기 때문인지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는 대목에서는 감정이 격해지곤 했다. 해방 이후 반세기 넘게 벌였던 국민 간의 갈등은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것이었다. 내 편이 아니면 적으로 몰면서 삿대질하고, 주먹질하고 심지어 뒤엉켜 싸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갈등의 종지부를 찍고 '통합과 화합'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니 이 말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습니다'는 대목도 빼놓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학연, 지연, 혈연은 물론 이념에 얽매인 동지애도 끊어내고 능력 위주의 인재 발탁을 하겠다는 말에 국민은 "이제야 진정한 우리의 대통령이 탄생했다!"며 무릎을 쳤다. 거기에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말까지 더했으니 국민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공정'과 '정의'가 주는 강렬한 임팩트에 가슴은 마구 뛰었다. 앞으로 누가 대권을 잡아도 이는 다시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여기에 마지막 카운터 펀치가 있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국민들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 드리겠습니다'에 우리는 모두 '오 마이 갓!'을 외쳤다. 정말 멋진 대통령이었다.

지난 5월 10일 문 대통령은 취임 3주년을 맞아 대국민 연설을 했다. 4·15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고, 대통령 지지율 역시 60%를 넘는 시점이라 이 연설에 거는 기대가 컸다. 계층과 이념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고, 일부 특정인들의 특권과 반칙으로 인해 공정과 정의가 훼손되고 있는 조짐이 보여 더욱 그랬다. 아니, 무엇보다 취임사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었던 국민들이 TV 앞에 모였다. 하지만 '통합' '공정' '정의' '화해' '반칙 없는 세상' 이란 단어는 찾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코로나' '일자리' '한국판 뉴딜','5G 방역' 같은 단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 의혹이 연일 악취를 풍기며 국민을 경악시키고 있다. 이미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진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수수사건에 대한 '재심'논의도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정의와 공정이 무시되고, 반칙과 특권이 스멀스멀 살아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정의연 사태를 두고 청와대와 집권당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에서 불행하게도 '제2의 조국사태'가 읽힌다.

언제나 가슴 뛰게 했던 취임사를 다시 꺼내 읽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는 대목에서는 까닭 모를 화가 치민다. 코로나 19로 만신창이가 된 지금, 또다시 조국사태처럼 분열과 갈등이 온다면 정말 슬픈 일이다. 취임사를 빛나게 했던 단어들을 찾아 다시 꿰매어,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건 오직 문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