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종욱 박사는 지난 2003년 1월 제6대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에 당선됐다. 벨기에와 멕시코 후보를 물리쳤다. 당시까지 한국인으로서 국제기구에 진출한 최고위직 인사다. 건축학을 전공했다 다시 의대를 진학해 국내 한센인을 돌봤다.
에이즈 퇴치에 큰 성과를 보여 '백신의 황제'로 불렸다. 비행기 일등석을 타지 않았고, 소형 하이브리드 차로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볐다. 빌 게이츠는 그의 재임 시절 7억5천만달러(약 9천160억원)를 지원했다. 왕성한 활동과 겸손한 태도로 존경받았으나 2006년 과로로 돌연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전략보건운영센터를 만들어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30분 안에 관계자가 모여 회의를 열 수 있도록 했다. 공식 명칭은 '이종욱 전략보건운영센터(JW Lee Centre for Strategic Health Operations, 약칭 SHOC)'로, '워룸(War Room)'이라 불린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신종플루,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발병 때 존재감을 드러냈다. 코로나 19 창궐 이후 WHO에서 가장 바쁘고, 가장 주목받는 센터다. 전 세계 감염병 정보를 모아 즉시 대응전략을 세울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이 지난주 WHO 정상화를 위해 일본인 사무총장을 배출하자는 엉뚱한 주장을 했다. "7개국(G7)은 차기 사무총장 선거에 후보를 내세워 WHO 정상화를 해야 한다. 일본이 사무총장을 내는 것도 유력한 선택지"라는 거다. 그러면서 "이미 차기 사무총장 선거에 한국이 '코로나 대책에서 세계적인 평가를 얻었다'며 후보자를 내려는 움직임이 전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무총장 임기가 2년이나 남은 시점에 생뚱맞은 보도를 하게 된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대한민국과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타깃(Target)이다.
비록 일본 우익의 도발이지만 양국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나쁜 기사'다. 팬데믹을 막아내려면 국가 간 공조체제가 구축돼야 한다. 대한민국이 코로나 확산을 효과적으로 막는다고 일본의 국격이 낮아지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에 배울 게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속 좁은 시샘과 질투는 이미지만 흐릴 뿐이다.
2년 뒤 일본이 WHO 사무총장 후보자를 낼 수 있다. 다만 대한민국과 정은경 견제구라면 부끄럽지 않은가.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