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커지는 '정의연·윤미향 사태'
사회공동체 파수꾼 역할이 목표인
시민단체의 권력유착 폐해를 본다
문제는 그 이후 '은폐·호도' 집착땐
사회운동 대의는 살아남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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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전 이사장의 사태가 날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성금 횡령이나 배임의 의혹은 시민단체가 경제적 이권을 찾아 타락하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국회의원 당선자인 윤 전 이사장에게 시민단체 활동은 정치권력으로 나아가기 위한 통로였을 수 있다. 시민단체 활동가가 위안부 문제에 당사자들을 배제하고 개입함으로써 국가간 외교를 왜곡시키고 국내정치까지 소용돌이치게 한 사실은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돌아볼 일이다.

세계적인 사회학자 찰스 틸리는 '동원에서 혁명으로'라는 저서에서 정치세력이 시민사회세력을 동원하고 호선하는 양상은 다원민주주의체제 하에서 불가피하다고 갈파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시민단체가 권력화하거나 시민운동가가 출세하는 일은 사회적으로는 부수적인 현상일 뿐이다. 모든 사회구성원들이나 집단이 사회문제를 의사결정하는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한 불가피하다. 사회문제를 위임하거나 대표하지 않고 스스로 정책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 또한 부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시민운동단체가 특정 정치권력과 지속적 유착관계를 맺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비정부기구로서 정파적, 계급적, 집단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전체 사회공동체의 생존과 발전에 기여해야 할 시민운동단체가 그 안에 갇힘으로써 우리 사회가 잃는 손실은 너무도 크다. 더군다나 그들이 공식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피해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소망을 펴보지도 못하고 사라져가거나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비난을 받거나 심지어 매도되면서 거듭된 피해와 고통을 받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이 그들의 지지에 기반을 두고 정치적, 정책적 선택을 수구할 수밖에 없다면, 변화하는 현실에 무능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말할 수 있다. 어떤 진영에 속한 사람이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여기까지는 쉽게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문제이다. 시민운동단체가 정치권력이라는 뒷배와 묻지마 지지를 외치는 진영 내의 군중을 믿고서 은폐와 호도를 일삼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시민운동을 우리 사회의 파수꾼으로 기대할 수 없다. 손잡고 협력해왔던 부적절한 동거가 무너지면서 스스로의 권력기반이 약화될까 두려워 정치권력이 이들을 두둔하고 나아가 타락한 정치공세를 지속한다면 이 나라의 정치와 역사는 다시 곤두박질치게 될 것이다.

여기부터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끝없이 확장되고 심화됨으로써 그 완성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산업화에 따르는 국가주의와 발전주의를 넘어서는 과정에서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갖는 성역과 금기들을 무너뜨렸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성역들을 만들어냈다. 민주주의를 촉발시키고 밀어준 사람, 장소, 사건, 그리고 이데올로기들이 성역화되었다. 보수적 산업화세력의 역사적 성찰성 결핍과 개혁적 민주화세력의 권력집착으로 인하여 우리 국민들은 진지하게 성찰하고 토론하면서 합의로 나아가기 보다는 사람들이 더 이상 건드려서는 안되는 성역들을 쌓아올렸다. 불가피했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쌓아 올린 성역들은 약간의 틈새나 지진에도 쉽게 무너져 버림으로써 그 가치들을 훼손시켜버린다. 강변한다고 해서 사회운동의 대의는 살아남기 어렵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성역 만들기가 횡행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미 이루어졌음에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여기저기 성역을 쌓아 올린다. 압축비약적 발전이 천민자본주의를 낳음으로써 가진 자들의 갑질과 사회적 양극화를 낳았었다. 그럼에도 토론과 합의가 부재한 민주주의는 5·18민주화운동을 지속적으로 폄훼와 반동에 시달리게 한다. 이처럼 졸속적 민주화의 길을 간다면 사회적 평등과 삶의 질, 생명과 안전이라는 기본적인 가치들도 페미니즘에 대한 냉소와 세월호에 대한 비인륜적 패악질로 나타날 것이다. 스스로 납득할 기회와 과정을 만들지 못하였으니 그들은 틈만 나면 못들은 체 하면서 트집을 잡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을 법과 제도로 짓누르겠다고 하면 우리 사회는 과거의 권위주의체제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것인가? 아무리 정의로운 가치와 이념이라도 비민주적 권위주의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