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문희상 국회의장이 최근 경인일보와의 간담회를 통해 막 내리는 20대 국회와 새로 시작하는 21대 국회에 앞서, 후배 정치인에 대한 당부와 지역 언론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 선거·사법개혁 마찰… 21대의 길은

시대정신은 못 거슬러 승복하는게 맞아
삼권분립 확립·입법 중점 '국회가 할일'

# 지역 연고 약한 인사들 득세

지역 대표성 고려 비중 50%이상 돼야
정당 '낙점' 선거운동 필요 없어질 수도

# 고개 숙인 보수 향한 조언

극단으로 치달으면 국민 지지 받지못해
한땐 자유 수호 왕보수… 평등과 조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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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가 나고 자라서 뼈를 묻을 고향, 의정부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경기도를 넘어 대한민국 정치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문희상 국회의장이 29일을 끝으로 국회를 떠난다. 2년 전 '민생을 꽃피우는 국회의 계절'을 강조하며 의장직에 올랐던 그가 정치를 떠나 고향으로 향하려 한다.

문 의장은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단했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이라며 "텃밭 10평과 꽃밭 10평이 꾸려진 40평짜리 단층집, 햇볕 드는 집에서 노후를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평생을 '정치'라는 길 위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문 의장. 새로운 인생의 출발은 언제나 그랬듯, 의정부에서 시작한다.

고향 '의정부'는 그가 실의에 빠져있을 때마다 따스한 손을 내밀어 준 곳이다. 6선의 국회의원에 오르기까지 두 번의 낙선과 수많은 위기의 순간이 있었지만, 시민들의 변함없는 사랑의 손길은 그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이는 제1~2대 국회의장을 지낸 신익희(1948~1954) 의장 이후 무려 70여년만에 경기도 출신 민주진영 국회의장을 배출한 원동력이 됐다.

그가 스스로의 정치 인생을 '후회 없는, 행복한 정치인'이었다고 단언하는 이유다.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과 함께 정계 은퇴를 선언한 문 의장을 만나 경기도 정치와 언론이 나아갈 방향 등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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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지난해 선거제도·사법개혁을 놓고 극심한 마찰을 빚었다. 20대 국회에 대한 평가와 21대 국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시대정신이라는 건 도도하게 흘러서 아무도 거스를 수 없다. 결국은 다 승복하게 돼 있다. 이미 겪은 파도는 이유가 있어서 오지 쓸데 없이 오지 않는다. 그 또한 방향이다.

21대 국회라고 해서 특별한 사명이 있다고 보진 않는다. 지금은 민주주의의 기본, 의회주의의 기본을 생각할 때다. 의회주의를 떠나서 다른 것을 하면 안된다는 뜻이다.

특히 거리에 올라서 시위하고, 이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수십 년에 한번 오는 혁명적 상황, 즉 국민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제도가 썩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하는 행위다. 이런 가두 민주주의는 이미 역사의 저 편에 있다. 20대 국회에서 (보수 야당이) 그걸 써먹으니까 4·15 총선에서 심판받은 것이다.

국민은 냉정하다. 입법을 하지 않는 국회가, 일하지 않는 국회가 어떻게 국민에게 신뢰받겠나. 맨날 싸움만 하다가, 오히려 저쪽에서 (입법)한 거니까 안하겠다고 하는 이런 구조 속에서는 아무 것도 안된다. 삼권분립을 지키면서 입법에 중점을 두는 것이야말로 앞으로의 국회가 할 일이다."

-지난 총선 공천은 지역 연고가 약한 인사들이 많다는 아쉬움을 남겼는데.

"(공천은)기능적, 분야별로 입법을 하는 국가적 기능에만 치우치기 보다는 지역 대표성도 상당히 고려돼야 한다. 그 비중이 50% 이상 돼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하면 어느 당을 찍을지 이미 정하게 되고, 선거운동도 필요가 없어진다.

이게 통신이나 SNS 등의 확산으로 새 풍속이 생긴 건지, 아니면 시대의 사조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선거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이게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는 더 두고 봐야겠고, 전문가들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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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의장과의 간담회에는 배상록 경인일보 대표이사 사장과 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 이기우 국회의장 비서실장, 한민수 국회 대변인 등이 배석했다.

-선배 정치인으로서 총선에서 패배한 보수에 대해 애정 어린 충고를 한다면.

"(총선에서)보수가 죽은 것 같지만, 나는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수는 어느 시대에서건 30%의 지지율을 가져갔다. 보수가 죽은 게 아니라 보수를 지탱하는 세력이 지리멸렬한 것이다.

보수는 지금 정신 차려야 다시 일어설 수 있고 그 에너지는 수도권에서 얻어야 한다고 본다. 

 

수도권은 아무래도 30% 보수, 30% 진보가 확실하다. 40%의 중도가 판단해서 보수 편을 들면 보수가 집권하는 것이다. 극단적이어서는 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보수는 이번을 전화위복으로 삼아 일어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지도부들이 희생하고, 의회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보수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세상을 가치로 크게 나누면 두 가지다. 하나는 자유로, 이를 최고로 발현하는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세상이다. 그게 보수라면 나는 왕 보수다.

애초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려고 정치를 시작했다. 그때는 가장 기본적인 비판의 자유가 억압받고, 권위주의와 군부독재가 판쳤다. 당시 야당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러나 가장 빠른 시간에 근대화된 것도, 민주화된 것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이 같은 상황 속에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골고루 잘사는 세상에 대한 꿈도 커졌다. 이게 평등이고, 이게 진보라면 나는 또 왕 진보다. 골고루 잘사는 세상,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이상은 누구든지 있다.

정치는 이 둘을 조화해야 한다. 두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동물정치가 된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발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죽기 살기로 덤비고, 국회는 그 현장이 된다. 그리되면 모두가 폭삭 망한다. 여당이 과반 석을 이뤘다고 희희낙락 하다간 둘 다 망한다는 게 바로 그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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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정치와 언론의 역할론에 대한 생각은.

"기본적으로 모든 동물은 귀소 본능이 있고, 자기가 자라고 나서 거기에 사는 것에 대한 애착이 있다. 지역주의는 안되지만, 애향심은 돋보여야 한다. 애향심이 없는 사람은 애국심이 없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지역주의는 자기네만 다 해먹겠다는 거다. 이른바 계파 패권주의로, 이건 안될 일이다. 그래서 평생에 걸쳐 반대해 왔다.

그러나 제 몫도 못 찾는 지역의 대표라면 그것은 할 일을 안 하는 거다. 그것을 누가 해주길 기다리면 안되고, 주체적으로 키워야 한다. 문제를 크게 보고, 수도권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발상 자체가 수도권 중심주의다. 베이징, 런던, 워싱턴 등 다 수도권을 재개발해서 지식이 집적된 게 수도권에 많은 것이다. 물류비용도 훨씬 적게 들고, 국가 경쟁력을 생각해서 다른 나라와 싸워 이기려면 수도권의 자원을 100% 활용하는 쪽으로 해야 국가가 발전하는 것이다. 전 세계가 그렇게 돼 가고 있다.

지역신문의 역할도 크다. 글(기사)을 쓸 때, 애향심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경기도 출신 의원들, 여야 가릴 것 없이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게 기본에 깔려야 비판을 해도 의미가 있다."

대담/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 jej@kyeongin.com 글·사진/이성철·김연태기자 kyt@kyeongin.com

■ 문희상 의장은?

▲ 1945년 경기도 의정부시 출생

▲ 14·16·17·18·19·20대 국회의원

▲ 2003년 2월 ~ 2004년 2월 제26대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

▲ 2008년 7월 ~ 2010년 5월 제18대 국회 부의장

▲ 2014년 9월 ~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 2018년 7월 ~ 현재 제20대 국회 후반기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