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은 한국 대중음악의 성장 거점이자 요지였다. 한마디로 부평이 있기에 고급스런 대중가요가 나왔던 것이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의 평이다.
우리 대중가요가 트로트 일색이던 1950~1960년대, 부평에서는 색다른 음악이 흘러나왔다. 재즈, 블루스, 로큰롤 등 팝음악이다. 이들 음악은 '현지화'(?) 과정을 거쳐 대중 속으로 파고들면서 우리 대중음악의 스팩트럼을 넓혔다. 외국 음악을 국산화한 주역은 미군부대에서 활약하던 뮤지션들이었다.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키보이스'의 리더 김홍탁,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연주자 김청산, '김희갑 악단'의 드러머 김성환 등 쟁쟁한 뮤지션들이 부평을 주 활동무대로 삼아 대중음악의 성장을 이끌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부평의 음악 역사를 이야기할 때 미군부대를 빼놓을 수 없다. 부평은 국내 최초로 미군기지가 들어선 지역이다. 일본이 부평 한복판에 조성한 육군 조병창(군수공장)이 해방을 맞아 폐쇄된 뒤 미8군 보급창인 '에스캄'(ASCOM)이 주둔해 기지화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군기지 주변에는 미군을 대상으로 한 클럽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동시에 미8군쇼 등 큰 무대에 서는 꿈에 부풀어있던 뮤지션들이 이들 클럽을 전전하며 음악의 꿈을 키웠다.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뮤지컬이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이하 당아시)이다. 노래와 연주를 배우들이 직접 라이브로 소화할 정도로 공을 들인 작품이다. 2014년 부평아트센터에서 처음 선을 보인 '당아시'는 서울 국립극장으로 무대를 옮기고 목포, 예산, 삼척, 무안 등 자치단체의 초청으로 순회공연까지 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몇년 전 보았던 이 작품이 다시 떠오른 것은 미군기지 인근의 한 건물이 헐렸다는 보도를 접하고 나서다. 에스컴이 캠프마켓(CAMP MARKET)으로 축소되는 1970년대 중반까지 미군기지 맞은편 '신촌'지역에는 20여곳의 미군 클럽이 있었다. 이 건물은 마지막 남은 클럽 건물로, 성업중일 당시의 클럽 이름은 '드림보트'(Dreambort)였다. '당아시'가 소환한 미군기지 일대 민초들의 꿈과 희망, 삶과 애환을 간직한 건물이었을 터다. 음악이 전부였던 아름다운 시절, 한 배고픈 뮤지션이 무대 한구석에서 술 취한 미군의 노래에 맞춰 기타를 치는 모습이 허물어진 건물 사진 위로 떠오른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