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머물라는 정부의 안전 조치
주거여건 열악 가구엔 삶의 위협
대면 서비스 비중 높은 저소득층
일자리 잃기 쉬워 퇴거위기 노출
1인 가구 일반적 형태로 인정해야
마스크가 얼굴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요즘, 우연히 '코로나 시대, 사회적 거리두기 가능 여부에 따른 주거 상황 양극화 경로'라는 표를 접했는데 상황이 꽤 심각한 수준이다.
국토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한 경우에는 재택근무를 통해 소득 유지가 가능하고, 안전과 워라밸이 유지되면서 주거 면적 수요가 증가한다. 감염병 위기 상황이 '슬기로운 주거 생활'을 가능케 하는 역설이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재택근무를 할 수 없어 소득이 감소하고 임대료를 체납하다가 퇴거 위기에 내몰려 노숙에까지 이르게 된다. 극단적인 비교일 수 있지만, 비대면이 대세가 되고 있는 시대에도 양극화는 어김없이, 오히려 심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재택 근무를 잠시나마 경험해본 결과 집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막상 TV를 보고 쉬는 공간이던 거실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업무를 하려니 영 일하는 맛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출퇴근을 하지 않고도 집에서 상당 부분의 업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꽤 괜찮은 조건에 속했다. 혼자 사는 동료는 집에 인터넷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재택근무 기간 동안 부모님 집으로 거주지를 옮겨야 했다. 장기간 재택근무를 경험한 20대 직장인은 "처음에는 좋아서 신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빨리 회사에 나오고 싶었다"면서 "좁은 원룸에 하루 종일 혼자 앉아있으려니 힘들고 지치는 것은 물론이고, 어느 순간부터 집이 답답하고 힘들어졌다"는 재택근무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이 직장인의 하소연은 재택 근무를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배부른 소리일 수 있지만, 적절한 휴식과 이완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의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남의 집에 놀러가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 생길 정도로 누군가에게 집은 취향의 전시장이자 재충전의 공간이지만 주거 환경이 취약한 많은 사람들에게 집은 편안한 쉼터가 아니라 오히려 더 위험하고 힘든 공간이다. "자기 집에 머물라"는 정부 조치가 주거 여건이 열악한 가구에게는 안전의 확보가 아닌 삶의 위협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금과 같은 감염병 상시 위기 상황에서 1인 가구의 위험성과 취약성은 더 가중된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었다고 하지만 불안정 직업군에 더 많이 종사하고, 최저 주거기준 가구가 많은 1인 가구일수록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대면 서비스가 필수적인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은 저소득 임차가구일수록 일자리를 잃기 쉽기 때문에 소득 하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이는 임대료 체불과 연체로 인한 퇴거 위기에 노출된다. 100년 전 스페인 독감 유행 시기에도 기저질환자 외에 주거 과밀가구, 주거 기준 미달 가구, 공공임대주택 거주자가 고위험군이었다고 하지 않는가.
국토연구원 조사 결과 직업군, 점유형태, 보증금 규모를 고려할 때 6개월 내에 주거 위기에 노출될 1인 가구의 규모는 41만6천 가구에 달한다. 특히 1인 가구의 거의 절반이 보증부 월세 또는 순수 월세 거주자인 것을 감안하면 위험도는 더 높아진다. 임대료 동결 및 납부 유예, 임대료 연체에 따른 퇴거 금지, 연체 가구 추적 및 긴급 임대료 지원, 공과금 납부 유예 및 기본 서비스 지속 공급, 공공임대주택의 사회안전망 기능 강화 등의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1인 가구를 일반적인 가구 형태로 인정하는 발상의 전환이 시작일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능한 집단과 불가능한 집단 간의 괴리가 발생하고 더 커지는 요즘, 이것이 주거 정책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실 주거 정책은 보건 정책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주거 정책의 혁신적 변화는 콜레라 발병 등 위생, 보건상의 위험과 직접 관련이 있어 왔다. 당장 역대급 폭염이 예고된 이번 여름, 무더위 쉼터 등 공공 영역에서 최소한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공간들을 더 많이 확보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 감염병의 발병을 주거 정책을 진일보시키는 계기로, 모든 이가 '슬기로운 주거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때다.
/정지은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