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궁 홍씨 회갑잔치 준비 장본인
훗날 영조는 정조에게 채제공을 기억하면서 "채제공은 나의 사심없는 신하이자 너의 충신이다"라고 말했다.
채제공의 업적 중 하나는 1791년(신해년) 시행된 통공 정책이었다. 통공이란 일부 시전 상인이 갖고 있던 금난전권을 폐지해 자유로운 상업을 허용하는 정책이다. 채제공은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상인들의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난전이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도록 건의했다.
신해통공은 '물가가 갑자기 전보다 내려갔다', '장작 가격이 옛날 가격으로 돌아갔다' 등의 기록이 남았을 만큼 성공을 거뒀다. 물가 안정, 소상인과 수공업자들의 수입 증가라는 효과를 거뒀고 국가의 재정 수업도 늘어나게 됐다.
채제공은 정조 시절 경제력과 문화 역량, 과학기술이 총동원됐던 '화성 건설 사업'의 총책임자로 임명받는다. 채제공은 화성이 삼남 지방과 한양을 연결하는 교통로에 위치한 장점을 살려 수도 한양과 마찬가지로 시전을 설치하고, 화성에 상인과 장인들이 들어와 살도록 혜택도 줬다.
왕실의 자금을 이용해 국가가 운영하는 농장과 저수지를 만들어 농업 기반을 갖추었고 화성 주민들에게 각종 세금 혜택을 줘 살기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도록 했다.
1795년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화성에서 치를 수 있도록 준비한 인물도 채제공이다. 회갑잔치는 화성의 완성과 어머니의 회갑을 기념하는 행사인 동시에 군사훈련까지 실시해 강력한 왕권을 보여 백성과 신하들을 통합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정조가 채제공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채제공 사후 내린 시호를 통해 알 수 있다. 채제공의 시호는 민첩하고 학문을 좋아한다고 해서 '문(文)', 마음가짐을 과단성 있게 한다고 해서 '숙(肅)', 문숙이다.
/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출처/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