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과 혁명의 비대칭 데칼코마니
70돌 6·25, 분단·학살 참혹함 경종
6·10은 지금 누리는 민주주의 굄돌
평화·개혁의 상징 '균형 실천' 시점

이 전쟁은 호국영령이나 현충일, 보훈 같은 단어로 금세 치환되는 비극적 성격을 강하게 품고 있다. 하지만 유월에는 1987년에 일어났던 6·10항쟁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념비도 있다. 그해 유월을 뜨겁게 달구었던 학생과 넥타이부대의 시민혁명이자 직선제 개헌 투쟁이기도 했던 사건이다. 이렇게 유월은 전쟁과 호국과 분단이 한 축을 이루고 혁명과 개혁과 민주주의가 한 축을 이루는 비대칭적 데칼코마니를 우리에게 던져주는 달이다.
올해 70주년을 맞는 6·25전쟁은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Korean War)'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국제전이자 이념전이었으며 더 구체적으로는 동족상잔이었던 이 전쟁은 적의(敵意)와 학살, 월남과 월북, 휴전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부산물들을 생성해냈다.
박찬승의 '마을로 간 한국전쟁'에서는 전쟁 동안 '마을'들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에 주목했는데, 말하자면 당시 마을들마다 벌어진 학살의 갈등 구조를 낱낱이 밝힌 것이다. 마을마다 깊은 골로 잠복해 있던 신분갈등, 계급갈등, 친족갈등, 종교갈등, 이념갈등 들이 전쟁기간 폭발한 실례들을 실증적으로 규명한 이 저작은, 평소 적대감을 가지고 있던 그룹을 치안 부재의 상황에서 어떻게 제거해갔는가를 소상한 증언 채록을 통해 들려준 것이다.
전쟁은 후방의 민간인들에게 더 참혹한 비극을 안겨준다는 역설을 웅변해준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렉시예비치가 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도 반전(反戰)의 메시지로 경청할 만하다. 그녀는 전쟁의 야수성과 그 잔혹한 희생에 대해 주목하면서, 500여 명의 목소리가 전해주는 전쟁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전쟁에 참여했던 소녀들의 실감 있는 증언을 기록하면서 그녀는 전쟁에 기꺼이 참여했던 소녀들이 얼마나 순진한 이상 속에서 비극을 겪어갔는가를 들려준다. 이 두 권의 책은 이 땅에 다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는 까닭을 충실하게 암시해준다. 그야말로 전쟁은 명분도 실익도 없는 전폭적인 상호 패배의 행위가 아니었던가.
올해 33주년을 맞는 유월항쟁도 한국 현대사에서 기념할 만한 민주화운동의 큰 봉우리이다.
1987년 1월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대학생 박종철이 사망하자 권력 쪽에서는 의문사로 덮으려고 했지만 시민들은 그의 죽음을 도화선으로 하여 장엄한 항쟁의 역사를 써가게 된다. 4월13일 대통령 전두환의 호헌 선언과 5월18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천주교 사제단의 성명으로 시작된 이 항쟁은 6월9일 대학생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지면서 전면적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함성을 전국적으로 이어가게 된다. 결국 29일 여당 대표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면서 이 항쟁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면서 이후 펼쳐지는 한국 민주주의의 확연한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이처럼 광주항쟁에서 유월항쟁으로 이어지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커다란 흐름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더없는 굄돌이 되어준 것이다. 항쟁 이후 문민정부가 출범하였고, 수평적 정권교체가 있었으며, 촛불혁명 등 시민혁명들이 이어지면서 우리는 지금 현대사에서 가장 훤칠하고 선명한 민주주의 역사를 써가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전쟁을 항구적으로 억지하고 민주주의를 점진적으로 키워가는 평화와 개혁의 쌍두마차에 올라타 있다. 양자를 균형 있게 추구하는 설계와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염병이나 공황을 당했을 때 전쟁을 돌파구로 택하곤 했던 파시즘 세력이 역사 속에 늘 있었다는 점을 떠올릴 때, 우리는 코로나 대응을 잘하여 민심이 응집해준 것이 그러한 가능성을 현저하게 줄였거나 없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전쟁과 파시즘이(전염병까지!)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날을 기원하면서 다시 숭고한 희생의 유월 앞에 서 있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