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텍 노동자 고공농성 모티브
편의점 직원·주인·배달 알바…
'삶의 마지막' 내몰린 사람들
절박함에 터져나온 목소리 담아

지붕, 옥상, 다리, 망루, 굴뚝, 크레인, 광고탑, 전광판, 조명탑, 철탑. "땅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란 말을 전하기 위해 올라간 곳. 1931년 평양 을밀대 지붕에 올랐던 강주룡에서부터 2019년 서울 강남역 철탑에 올랐던 김용희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노동자가 마지막으로 택한 곳.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가 모티프로 하고 있지만 무대에 나오지 않는 고공.
작품의 배경은 편의점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편의점 뒷마당이다. 왜 편의점일까. 편의점은 주인공 정화의 일터이다. 그의 일터에 다른 인물이 찾아오며 이야기가 모인다. 명호, 선영 그리고 보람이 그들이다. 그들을 따라 사건이 편의점 뒷마당에 펼쳐지고 쌓여간다.
명호는 정화를 누나라고 부른다. 명호는 정화 남편의 회사 동료다. 남편은 굴뚝 위에 있었고 명호는 그 아래에 있었다. 밧줄 하나로 묶인 두 사람이었으나 남편이 굴뚝에서 내려온 뒤로는 그 끈이 끊어졌다. 집밖을 나가지 않는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꾸리는 정화의 입장에서는 명호를 마주할 수 없다. 그런 명호가 편의점으로 찾아온 것이다. 남편이 빌려간 돈을 돌려 달라며.
선영은 학습지 교사이다. 교사로 처음 가르친 학생이 정화의 아이들이다. 밀린 학습비를 대납할 정도로 애정이 많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며 그도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졌다. 실적이 좋지 못해 학습지 교사 자리가 위태롭다. 하루에 만원씩이라도 받아야겠다며 편의점에 찾아온 것이다. 보람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지금은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편의점 점주가 지급하지 않은 임금을 받기 위해 편의점에 온다. 점주를 만나지 못하고 정화에게 서류를 맡기고 간다. 배달로 바쁜 시간에 왜 오는지 모르겠다는 점주에게 "시간이 아까우니까 오는 거겠지요"라는 말은 하지만 정작 서류를 전달하지 못한다. 명호에게 줄 돈 삼백만원을 빌려야 하는 처지여서 내밀었던 서류를 다시 가져간다.
점주는 2호점을 내고 싶어 한다. 단시간노동자를 짜내는 방법도 안다. 달래거나 협박하는 화법에도 능하다. 정화의 노동시간도 그렇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2호점을 내려면 본사와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밀린 임금 사백오십만원보다 많은 돈을 보람에게 계좌로 입금한다. 그러나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모른다.
그렇게 90분간의 연극은 마지막 한 장면을 위해 차곡차곡 쌓여간다. 돈을 받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보람의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유리창에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편의점 문을 안에서 잠근다. 이 장면에서 정화는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꾼다. 정화는 비상키로 문을 열라는 점장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안에 사람이 있어요. 들어간 이유가 있겠지요"라며 점장을 호출한다. 그리고 문 밖에서 보람의 곁에 앉는다. 명호와 선영도 따라 앉는다. 옆에 함께. 그렇게 연극은 끝난다.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는 마지막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게 마지막이야", "약속할게".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순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오는 말,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나서야 처음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했다는 사실에 멈칫하게 되는 말, 무너지는 자존감보다 절박함이 앞서 다시 튀어나오는 말. 그러면서도 옆에 함께 앉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일상의 공간이 어쩌면 지붕, 옥상, 다리, 망루, 굴뚝, 크레인, 광고탑, 전광판, 조명탑, 철탑의 고공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밀려난 목소리를 남기며 연극 무대는 어두워진다. 어둠 속에서 "안에 사람이 있어요. 들어간 이유가 있겠지요"라는 정화의 말은 무대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남편에게 전하는 말로 바뀌는 듯하다. "위에 사람이 있어요. 올라간 이유가 있겠지요."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