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일정액의 소득을 국민 모두에게 지급한다. 부자든 가난하든 일을 하든 안 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무조건 공평하게 지급한다. 이것이 '기본소득'의 골자다.
기본소득이 화두다. 여기 가도 저기 가도 온통 기본소득 얘기뿐이다. 재난소득의 달콤함에 빠진 탓인지,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의 저항도 크게 줄었다. 좌파의 전유물인지 알았는데, 김종인 미래통합당 대표가 느닷없이 "빵 사 먹을 돈이 없다면 자유가 있을 수 있겠느냐"며 기본소득을 들고 나왔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증세나 재정 건전성 훼손 없이 기본소득 시행이 가능하다며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일자리를 뺏어 간다는 우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첨단 로봇이 확산하면 대규모 실직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 로봇 소유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해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이 나온 지도 20년이 훌쩍 넘었다. 여기에 더해 미국에서는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유럽에서는 복잡한 복지제도를 단순화하기 위해 기본소득이 논의됐다. 실제 핀란드는 2017년 1월부터 2년간 25세부터 58세까지 2천명을 대상으로 월 560유로를 주는 기본소득 실험을 시행했다. 일자리를 얻어도 기본소득은 그대로 지급됐다. 당시 핀란드의 실업률은 9.2%. 스웨덴·덴마크 등 인근 국가보다도 높았다. 하지만 고용률이 향상되지 않는 등 결과는 좋지 않았다. 결국, 기본소득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재원만 풍족하면 얼마든지 나눠주는 것도 나무랄 일이 아니다. 문제는 재원이다. 우리나라 전 국민에게 월 30만원씩만 줘도 연간 180조원이 필요하다. 얼마를 지급하는가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세금 부담은 피할 수 없는 숙제다. 물론 노인 아동 실업수당 등 사회보장제도를 폐지하고 이를 모두 기본소득에 포함한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뒤따르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왜 기본소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도 필요하다. 일이 사라진 세상, 정부가 주는 기본 소득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라는 철학적인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한번 꽂히면 거기에 집착하는 우리 국민 특성상, 2년 후 대선까지 기본소득 논의로 날을 새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