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관련 은폐·축소 드러나
美·中·유럽도 내재적 능력 시험대
우리보다 우월하다는 생각 뒤집혀
한결 성숙한 문명사 인식적용 필요

미국은 지금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만 십만 명이 넘는 가운데 마흔여섯 살의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에 의해 목이 졸려 죽은 사태로 인해 전국적인 시위, 폭동에 휘말려 버렸다. 미국이 의료보험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나라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던 터다. 그리고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달라 보이는 백만장자 대통령에 이번에 나타난 문제들까지 연일 화상에 오르내리고 보면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던 미국인가 싶은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유럽은 어떤가 하면 이 나라들 역시 만만찮은 약점을 노출한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독일, 영국 등 유럽 '공동체'를 이루는 주요 국가들이 보여준 코로나19 대응 양식은 스웨덴의 집단 면역 전략의 허실까지 합쳐져 '선진' 제국들에 대한 인식을 자못 뒤바꾸어 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 희생되었건만, 적절한 방역보다 개인의 자유 운운하는 '한가로운' 주장으로 문명국의 위상을 지탱해 보려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게 돌출하곤 한다.
한국인들이 가장 놀라웠던 것은 바로 옆 나라 일본일 것이다. 일본은 한국을 35년씩이나 강점했고 패전 이후에도 한국전쟁을 지렛대 삼아 재기에 성공, 오랫동안 아시아에서 유일한 G7 멤버라는 자부심 속에서 한국 사회를 한 단계 아래로 내려다보아 왔다. 한국인들도 일본이 저지른 만행과 악행들에 대해서는 반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더 발전된 사회라는, 그들이 믿는 '신화'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라면 사실이다.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 이후 오래 지속되어온 이 인식의 구조를 이번의 코로나19 사태는 단번에 해체시키고 있다 해도 큰 틀림은 없을 것 같다.
온갖 매체를 통해서 들리고 보이는 일본의 코로나19 방역 능력은 낡디 낡았고 무능력했으며 은폐와 축소로 점철되어 있다. 아베의 '혐한' 선동 정부는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인한 희생자 숫자부터 속이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폐렴 '초과 사망' 숫자가 코로나 19 사태의 도래와 더불어 비정상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데서도 확실히 드러난다. 한국처럼 그네들도 긴급 재난 구호금을 십만 엔씩 주겠다고 했지만 종이 서류에 의존하는 낡은 행정 인프라와 유령 업체에 외주를 주는 부패한 정부로 인해 국민 모두가 혜택을 입는 날은 멀기만 하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일본 사회가 세밀하고 원칙적이고 이타적이라는 신화적 선입견을 인정해 주어 왔건만 정작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드러난 일본 사회와 그 구성원들은 엉성하고 임시방편적이고 이기적이기까지 했다. 방역 시스템이 구비되지 않은 다른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감염된 사람이 병원에 출입하는 것을 꺼리는가 하면, 검사를 극히 억제하는 풍토 탓에 고립된 죽음을 당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중국도 미국처럼 코로나19 유행에 이어 홍콩 사태까지 겪고 있어 미·중 갈등에 '일국양제(一國兩制)' 문제까지 미래를 점치기 어려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근대 이행기의 위기를 겪고도 큰 땅덩이를 지금껏 유지해 왔지만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험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에 있어 '자유'는 좋은 삶의 근원적 조건임을 재확인해 두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한국인들은 미국과 유럽, 일본, 그리고 중국 같이, 이제까지 자신들보다 우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었고, 또 믿어주었던 나라들이,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도 할 수 있다. 필자는 코로나19의 팬데믹과 더불어 새롭게 인식된 이 상황을 '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말로 정리하고자 한다. 해방 이후 이제까지 한국인들이 식민지적 잔재를 극복해야 한다는 뜻에서 '포스트콜로니얼'한 시대를 보내왔다면 지금부터는 '우리가' 세계사와 보편, 동등을 공유한 사람들임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윤미향' 사태가 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필자는 이 문제가 누구의 잘못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를 처리하는 우리의 세계사 인식, 한일 관계 인식이 새로운 터전 위에 서 있어야 하리라는 것이다. 한결 성숙한 문명사의 인식 적용이 필요한 때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