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정부·미국 언론 사망자 추모 앞장
타 국가들에 비해 성공적 방역 수행 불구
병원 전전하다 숨진 고교생 등 273명 '사망'
상대평가에 가려진 생명 예우하는 건 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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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논설실장
지난 1월 20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30대 중국인 여성. 후베이성 우한시 화난시장을 방문했던 30대 중국인 여성이었다. 당시만 해도 코로나19는 정식 명칭도 없이 우한폐렴으로 불렸다. 그녀는 2월 6일 완치판정을 받았다. 자신을 치료한 의료진을 "나의 영웅"이라고 칭송한 뒤 한국을 떠났다. 하지만 그녀가 떠난 뒤에도 우한폐렴은 조용히 확산 중이었다. 31번 확진자가 발생한 2월 18일. 이 날을 기점으로 세상이 뒤집어졌다. 2월 29일 3천150명, 4월 3일 1만62명. 단 40여일 만에 대한민국은 공포의 도가니에 갇혔다.

1번 확진자 발생 이후 대구·신천지교회 1차 팬데믹을 거쳐 지금 우리는 n차감염 시대를 살고 있다. 1차 팬데믹은 4월 초순경 진정됐지만, 생활방역 전환 이후 5월 황금연휴 이후 발생한 이태원클럽형 집단발생이 수도권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감염경로가 오리무중이다. 우한폐렴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당당하게 '코로나19' 대관식을 마치고 AC(After Covid19) 시대를 열어제쳤다.

인류에겐 슬픈 대관식이었다. 코로나19의 침략은 기습적이고 전면적이었다. 엄청난 인명이 영문도 모른 채, 병원에도 가보지 못한 채 죽음에 내몰렸다. 7일 오전 9시 기준으로 전세계 코로나19 환자는 679만8천808명이고 사망자는 39만7천936명이다. 미국 사망자 10만9천702명은 베트남전 전사자의 두배다.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의 사망자는 각각 수만명에 이른다. 코로나19의 불가항력성을 인정하더라도, 방역과 의료의 구멍이 너무 컸다.

스페인 정부는 지난달 27일부터 열흘간 코로나19 사망자를 기리는 공식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전국 모든 공공기관 건물과 해군 함정에 조기를 게양했고, 마지막 날 국왕이 공식 추모식을 주재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언론이 사망자 추모에 앞장섰다. 진보매체인 뉴욕타임스(NYT)는 1면 전체를 코로나19 사망자들의 이름과 짧은 부고로 채웠다. "늘 웃어주셨던 우리 증조할머니." "우리집의 반항아." "누구도 그녀처럼 크림 감자와 튀긴 옥수수 요리를 하지 못했다." 한 줄의 부고는 짧지만 강렬하다. NYT의 편집배경 설명이 인상적이다. "숫자는 일부만 보여준다. 이들이 어떻게 아침을 맞이하고 밤에 잠이 들었는지는 결코 전달하지 못한다." 모든 삶은 불가역적 가치를 갖는다. 차이는 있을지언정 차별은 있을 수 없는 인생이고 삶인데 어떻게 사망자 총인원수에 가둘 수 있겠는가.

코로나19는 우리에게도 273명(7일 기준)의 희생자를 남겼다. 사망자 상당수가 1차 팬데믹 기간에 불행을 당했다. 당시 대구는 아비규환이었다. 중증, 경증 구분없이 음압병실을 운영하는 바람에 입원대기 중 자택에서 사망한 환자들도 있었다. 한 고교생은 병원을 전전하다 사망했다. 1차 팬데믹에 넋이 나간 정부의 방역행정 혼란에 희생된 셈이다. 60대 여성인 31번 확진자가 양심불량죄로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방역당국은 대구 신천지교회 집단감염 경로 파악에 실패했다. 이미 1차 팬데믹 자체가 기원을 알 수 없는 n차감염의 대참사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사망자 273명의 생명이 더욱 안타까워진다. 방역전선 어딘가에 뚫린 구멍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코로나19 방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은 맞다. 터무니 없는 희생을 치른 국가들과의 객관적 비교로 방역선진국의 위상은 선명하다. 덕분에 여당은 전대미문의 총선압승을 거뒀고, 문재인 정부는 요새 처럼 탄탄해졌다.

하지만 방역선진국의 방역전선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었다. 미세한 구멍으로 스며든 바이러스가 273명의 국민 목숨을 앗아갔다. 코로나19와의 전쟁 희생자들이다. 국민들은 바이러스와 정신없이 싸우느라 산발적으로 발생한 희생들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정부의 방역성공에 가려진 가치있던 생명들을 예우하는 건 당연하다. 코로나19 희생자 273명. 상대평가에 가두어 소홀히 할 생명들이 아니었다. 희생은 더 늘어날 것이다. 이제 정부가 코로나19 희생자들을 공식적으로 애도할 때가 됐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