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다운 선택한 나라는 '불황 충격'
스페인독감후 생산·소비 양식 그대로
비대면은 또다른 대면서비스 유발
은행 ATM 되레 고급일자리 만들어
백신 개발땐 이전사회 회귀 가능성


경제전망대-허동훈10
허동훈 인천연구원 부원장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자주 듣는 말이 '코로나19 이전 사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주장이다.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 확대, 서구의 위상 악화, 불평등 표출 등 여러 영역에 걸친 변화를 점치는 사람이 많다. 특히 비대면 업무와 서비스가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에 대해서는 이견이 거의 없다. 과연 넥스트 노멀(Next Normal)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근본적인 변화가 도래할 것인가. 코로나19는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진원지였기 때문에 글로벌 공급망에 타격을 줬다. 리쇼어링 필요성이 제기된 배경이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이 코로나19로 더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코로나19가 리쇼어링을 촉발할지는 불확실하다. 리쇼어링이 진전된다면 코로나19보다 공장자동화와 개도국 인건비 상승이 더 큰 원인이 될 것이다.

코로나19는 경제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한국처럼 저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대신 필수업무를 제외하고 경제활동을 멈추는 락다운(Lockdown)을 선택한 나라는 그 충격이 훨씬 크다. 논란이 된 통계오류를 수정하면 4월 미국 실업률은 19.7%에 달한다고 한다. 작년 말 실업률은 3.5%였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황이 얼마나 깊게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불확실한 코로나19의 재확산, 치료제 및 백신 개발 여부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확신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달면서도 백신 개발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사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주장과 백신 개발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은 둘 다 지배적인 견해이지만 양립할 수 없다. 코로나19 이후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하는 넥스트 노멀은 백신 개발의 조건이 아니지만, 백신 개발 실패는 넥스트 노멀의 전제다. 백신 개발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이 맞는다면 넥스트 노멀 가능성은 없다. 백신 개발과 양산이 이루어지면 코로나19 이전의 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 다만 그때까지는 큰 변화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20세기 초 약 2년간 기승을 부린 스페인 독감 사망자는 약 5천만명이다. 세계화 시대가 아닌데도 전 세계가 영향을 받았다. 지금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피해가 컸지만 이로인한 생산 및 소비 양식의 큰 변화는 없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비대면 활동 증가 추세는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비대면 사회라고 부를만한 근본적 변화가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금융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통신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대다수 업무를 원격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그렇지만 금융기관 본사는 비싼 땅값을 감수하고 대도시 중심지에 모여 있다. 그 이유는 전화나 온라인, 인터넷이 대체할 수 없는 대면접촉의 중요성에서 찾을 수 있다. 서로 모여 있어야 대면접촉을 통해 직원 간 그리고 직원과 고객 간 정보교환이 쉬워지고 그게 생산성에 큰 도움을 준다.

대표적인 비대면 서비스인 화상회의는 대면회의를 대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는 대면회의를 통해서 단순히 말을 듣고 자료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회의 참석자의 표정과 보디랭귀지를 읽어서 이해하고 반응한다. 회의 전후에도 비공식적인 대화를 나눈다. 화상회의에서는 그게 어렵다. 지식기반경제의 근간인 혁신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상호학습과 교류에 의해 일어난다. 공식적인 회의도 중요하지만 비공식적인 접촉과 가벼운 담소에서 중요한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다. 비대면 서비스는 또 다른 대면 서비스 수요를 유발하기도 한다. ATM이 개발되자 수많은 은행 창구 직원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내다본 사람이 많았지만 예측이 빗나갔다. 단순한 입출금 대신 고객의 자산관리나 금융거래를 돕는 상담 및 자문 업무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고급 일자리가 더 생겼다.

미래를 예단할 수 없지만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백신 개발에 힘입어 코로나19 이전의 사회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백신 개발에 실패해도 코로나19는 스페인 독감처럼 지나가는 폭풍에 그칠 수도 있다.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실패하고 코로나19와 더불어 살게 되면 비대면 활동이 증가하겠지만, 교통사고 위험이 있다고 자동차를 포기하지 않듯이 우리는 중요한 대면 활동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허동훈 인천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