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영어 알면서도 만든 'untact'
일종의 '스노비즘' 아닐까 의심
'비대면' 보다 '비접촉'이 낫다
언어는 이데올로기 담는 그릇
일단 만들어지면 고치기 어려워
불과 반년 만에 이 세상은 아주 많이 달라졌다. 어떤 이는 "이제 인류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극단적으로 짚기도 한다. 코로나가 가져온 변화 중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꾼 핵심은, 지금까지 사람 사이의 소통과 접촉이 미덕이라 믿었던 믿음을 반대 방향으로 틀어놓은 것이 아닐까 한다. 즉 얼굴을 대고 만나는 접촉이 이제는 불편한 것이 되었다. 물론 소통과 연결은 여전히 필요하기에 접촉하지 않고도 만나는 방법들을 열심히 찾고 있다. 접촉 없이 물건을 사고, 접촉 없이 직장을 다니고, 접촉 없이 사랑하는 것, 이런 트렌드가 이제 우리 일상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 비접촉성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분석하고 진단하고 있다. 그 핵심 키워드로 '언택트'라는 용어가 급부상하였는데, 오늘은 바로 이 용어의 타당성에 대해 한번 따져보고 싶다. 짐작하다시피 '언택트'는 접촉을 뜻하는 '콘택트(contact)'에 부정접두사 'un-'을 붙인 것, 즉 'uncontact'를 축약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untact'는 물론 'uncontact'라는 단어조차 사전에 나오지 않는, 말하자면 '콩글리시'라는 사실이다. 자료를 조사해보니 '언택트'는 2017년에 김난도 교수가 중심이 된 '트렌드코리아연구팀'이 만든 신조어이며, 그들 자신도 이게 엉터리 영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언택트'에 해당하는 정확한 영어는, 명사로는 'non-contact'와 접촉이 전혀 없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zero contact'라는 표현을 쓰고, 형용사로는 'contactless'라 쓴다. 이 지점에서 고민거리가 생겨난다. '언택트'가 짧고 강렬한 느낌이 들지만, 꼭 영어를 그것도 잘못된 영어를 일부러 만들어 써야 하나? 나는 언어 국수주의자도 아니고 근본주의자도 아니지만, 이런 식의 '창의적' 조어에는 찬성하고 싶지 않다. 한국에서만 통하는 영어는 영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니다. 영어 비슷하게 만들면 좀 멋있어 보일지 모른다는, 일종의 '스노비즘(snobbism)'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근래 우리 언론에서는 '언택트'에 해당하는 '비대면'이라는 말도 사용하고 있다. '비대면'이 어떤 뜻인지는 알겠는데, 문제는 '얼굴'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사람 사이의 접촉으로 한정될 수가 있다. 근래 연결이 필요 없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의 '비대면적' 삶을 도와주고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에 저장된 앱으로 신용카드 스캔 없이 돈을 지불할 수 있다. 이것을 '비대면 결제'라고 하면 이상하다. 또 영어의 'contactless'에 해당하는 형용사적 서술어로 '비대면적이다'라고 하면 상당히 어색한 표현이 된다. 사람과 도구에 모두 사용 가능하고, 문맥의 연결이 편하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비대면'보다는 '비접촉'이 낫다고 본다. '대면'보다 '접촉'이 우리에게 친근하고 활용성이 너그럽다.
물론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분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언어는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담는 그릇이어서 일단 만들어지면 고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잘못이 발견되면 빨리 수정해야 한다. 잘 알다시피 '핸드폰'은 보편화한 콩글리시, 이제와서 우리말 '휴대전화'로만 부르자거나, 정확한 영어인 '셀룰러폰'으로 쓰자고 해봐야 소용없다.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 한번 거꾸로 걸려 익숙해진 그림은 되돌려 걸어 놓아도 바른 그림이 되지 않는다. 단지 외래어 용어만이 아니다. 모든 제도와 법과 관습도 잘못 굳어지기 전에 곧바로 돌려놔야 한다.
/정한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