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서 위기 파열음 깊어지는 느낌
기껏 바이러스 하나도 못 이기면서
인간 초인류 진화 희망에만 부풀어
이젠 자본 산업화 근대체제 넘어서
생각·일상 바꾸는 새전환 필요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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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곳곳에서 위기를 알리는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그 소리가 워낙 크기도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기에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그 결과인지, 어느 것이 우선하는 위기인지 알기도 힘들다. 흘러넘치는 정보와 지식에 묻혀 지난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이 아는 듯한데, 이 파열음의 진정한 원인과 해결책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위기가 깊어지고 있다는 느낌만은 점점 뚜렷해진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적 대감염의 위험은 감지했지만, 이 위험이 깊어질수록 드러나는 숨어있던 수많은 위기는 절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거대담론으로 정치와 경제, 문화와 사회를 말할 수 있지만 위기는 언제나 구체적인 삶에서 시작되며, 불안과 두려움에 빠지게 하면서 점점 더 뚜렷해진다. 그렇다. 바로 너와 나의 삶이 문제가 되고, 나의 실존이 불안에 허덕이고 있다. 마침내 그 불안은 사회적 위기로 나타날 것이다. 위험은 감지하는 것이지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하는 위험은 해결책을 보여줄 테니 더 이상 두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감지한 이 위기는 거대한 전환의 시기가 다가왔음을 절박하게 외치고 있다. 아니 그 외침은 이미 몇 십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다만 우리가 듣지 못하였으며, 들었음에도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 사이 위기는 점점 더 커져 근본적인 전환 없이는 극복할 수 없으리만큼 깊어졌다. 인간의 과거와 미래가 어떤 초월적 존재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현재와 우리 삶은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야만 한다.

정보과학기술과 생명과학기술의 엄청난 발전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트랜스휴먼의 꿈을 가져다주었다. 온갖 질병과 노화를 넘어설 뿐 아니라, 초지능과 결합하여 초인류로 진화할 것이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심지어 인간이 신의 위치에까지 다가갈 것이라 공언한 역사가가 세계의 각광을 받기도 했다. 신은 아닐지언정, 생물학적 한계 정도는 쉽게 넘어설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찬란한 희망의 불빛에 가려진 현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위기의 파열음을 보내고 있다. 다시금 생각해보라, 정말 인간은 초인류가 될 것인가? 설사 그렇게 된다면 인간이 지닌 모순과 한계, 우리 안의 어두운 심연은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그것이 빗어내는 인간 사이의 문제는 어떤 초지능이 해결해줄 것인가. 기껏 바이러스 하나 이겨내지 못하면서, 그것이 주는 두려움 하나 어찌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가려진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초지능을 갖춘 채 다른 별로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철학적 조류는 80년대를 지나면서 이미 이런 위기를 경고하면서 계속해서 문명과 사유의 전환을 부르짖었다. 다만 듣지 않았다. 산업시대는 지났음에도 자본과 과학기술의 현란함에 가려 그 그림자를 보지 않았을 뿐이다. 정보과학기술의 과도함이 그 미세한 경고음을 듣지 못하게 했을 뿐이다. 지금의 사태는 어쩌면 마지막 경고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미시적이면서 거시적이어야 한다. 생각의 틀을 바꾸고 일상의 삶을 바꿔야 한다. 보는 곳을 바꾸고 보는 방법을 전환해야 한다. 현란함과 풍요를 보지 말고 그 뒤에 감춰진 어두움을 직시해야한다. 그 이전부터 들려왔던 패러다임 전환 요구를 새롭게 들어야 한다. 몸과 마음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우리가 사는 일상에서 듣고 말하고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성장과 풍요의 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일상적 삶은 물론, 우리가 사는 공동체조차도 결코 지켜내지 못한다. 자본의 논리와 그 유혹을 벗어야 한다. 재벌이 아니라 공유하는 경제가 살아야 한다. 한 줌의 권력으로 가려진 그들을 보이지 않게끔 만드는 그들을 넘어서야 우리 삶이 살아날 수 있다. 자본과 산업화에 성공한 근대의 체제를 넘어서지 않으면 이 위기는 극복되지 않는다. 넘어서기 위해 체제를 바꿔야하고, 바꾸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언론과 법과 경제의 한 줌 권력에 취한 자들은 보지 않으려 한다. 거부하는 그들을 넘어 너와 나 우리가 변혁해야 한다. 변하기 위해 그 어두움을 봐야 한다. 보면 알게 되고, 알면 바꿀 수 있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