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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은 주로 변호사 출신 시어도어 소렌슨이 썼다. 물론 혼자 쓴 것은 아니다. 작성 전 대통령과 연설 작성팀 간의 충분한 토론을 했다. "조국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기 바란다"는 그 유명한 연설도 소렌슨의 손을 거쳤다. 여기에 교수, 언론인, 행정가 출신으로 구성된 전문가 그룹 '스핀닥터'의 조언이 가미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2009년 9월 건강보험 개혁법안 상하원 합동연설은 35세의 코디 키넌 백악관 연설담당 비서관의 손을 거쳤다. "지금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도덕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는 정책이 아니라 '미국의 특징', 사회적 정의의 근본 원칙에 대한 것"이라는 연설은 '미국의 특징'이라는 문구 하나 때문에 지금도 회자한다. 오바마는 연설 직전까지 연설문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수정하면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문장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8년간 연설문 작성을 담당한 강원국 전 연설 비서관은 저서 '대통령의 글쓰기'에서 두 대통령이 연설문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보여준다. 김 전 대통령은 초안을 올리면 빨간 펜으로 연설문 가득히 수정해 수차례 내려보낸 뒤 완성했고, 노 전 대통령은 문맥이 낯설면 새로 쓰라고 하거나 본인이 직접 컴퓨터로 고치기도 했다. 국정 철학과 방향, 대국민 메시지가 연설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그만큼 신중하고 철저하게 준비한 것이다.

최근 대통령 연설문을 두고 진중권 전 교수와 청와대 전·현직 비서관 간의 논쟁이 벌어졌다. 진 전 교수는 "남이 써준 연설문을 그냥 읽는 느낌이 든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연설문을 보면 치열한 고민과 철학을 읽을 수 있는데 문 대통령 연설에는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비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점은 너무도 의외다.

대통령의 연설문에는 국가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 한 자 한 자가 역사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회의와 독회(讀會)를 거친다. 대통령의 명연설은 수많은 논의를 거칠 때 비로소 나온다. 감성적 문체를 많이 사용했다고 해서 모두 명연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국민에게 감동을 준다면 그것이야말로 명연설일 것이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