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갈량은 유비 사후, 그의 유지를 받들어 위나라를 정복하기 위한 북벌에 나선다. 하지만 1차 북벌부터 꼬였다. 아끼던 장수 마속이 제갈량의 작전에 따르지 않아 패배하는 바람에 전쟁 전체를 망친 것이다. 제갈량이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베었다는 '읍참마속(泣斬馬謖)' 고사의 유래다. 전국시대 위나라 장군 오기는 병사의 종기에 입을 대고 고름을 빨아냈다. 병사의 어머니가 통곡했단다. 그 병사의 아버지도 오기가 고름을 빨아주어 살렸는데,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다 진짜 죽어버린 것이니, 아들 또한 그리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적과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는 군기(軍紀)가 생명이다. 명령을 정확하게 실행할 수 있는 기강이 살아있으면 강군이고, 기강이 무너지면 오합지졸이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모든 군 지휘자는 군기 유지에 각별히 힘썼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 장군은 군령과 군법 위반자에 가차없었다. 곤장 맞은 병졸은 허다했고 장대에 목이 매달려 효시된 탈영범과 군법위반자가 한 둘이 아니다. 군기가 바짝 선 조선 수군은 제해권을 장악했다. 6·26전쟁 영웅 백선엽은 낙동강 전선에서 병사들에게 "내가 두려움에 밀려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쏘라"며 돌격명령을 내렸다. '사단장 돌격' 신화다. 군법·군령의 엄정한 집행과 장수의 솔선수범이 군기를 세우고 강군을 만든다.
국군이 걱정이다. 금수저 병사의 황제 군복무 논란은 군기 문란의 끝판을 보여준다. 재벌가의 아들인 공군 병사가 상급자인 부사관에게 빨래와 음료수 심부름을 시키고 무단외출과 불법면회도 모자라 전용 생활관을 썼다는 의혹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믿고 싶지 않을 정도다. 이에 앞서 육군 병사가 여성 중대장을 야전삽으로 폭행하고, 육군 부사관들이 장교를 성추행했다는 하극상도 노출됐었다. 당시 북한 선전매체 메아리는 우리 군을 "남조선군은 복장을 통일하고 모여 생활하는 날라리들의 모임"이자 "총을 잡은 자유주의 구락부"라고 대놓고 조롱했다. 금수저 병사에 대해선 어떤 조롱을 내놓을 지, 멀미가 날 지경이다.
북한이 대놓고 군사도발을 예고하고, 대한민국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 대해 참담한 언어테러를 가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군대에선 병사들이 상관을 폭행하고 추행하고 부리고 있다니…. 정신전력 만큼은 최강이었던 대한민국 국군이다. 강군의 기억이 추억이 되면 안된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