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무왕때 전북 정읍에 창건 사찰
단풍나무 108그루 자리한 숲길 유명
대웅보전 앞 통나무의자 잠시 빌려
목탁·독경소리 아름다운 진언 위안
내마음에 새긴 또하나의 장소된 셈
마치 어머니의 품 안에서 듣던 결 고운 자장가처럼 피안으로 인도하는 듯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독경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숨을 죽이고 침을 꼴깍 삼키면서 소리에 젖어들었다. 독경은 대웅보전이 가까워질수록 귀를 뚫고 마음으로 들어가 영혼까지 전달되는 듯 차고 맑다. 일정한 리듬으로 반복되는 목탁소리와 독경 소리, 스님의 목소리엔 음의 고저나 리듬에 기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무심한 듯 단정하게 반복되는 나무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아미타'라는 부처님과 '관세음'이라는 보살은 인간을 위해 가장 많은 헌신을 하신 분으로 '아미타' 부처님의 상이 '아미타불'이고, '관세음' 보살님의 상이 '관세음보살'이다). 그것도 녹음된 소리가 아니라 바로 눈앞의 법당 안에서 라이브로 들려주는 스님이 계시니 사찰을 찾아간 보람은 물론 여간 위안이 되는 게 아니었다.
이 평온하고 아름다운 게송을 나는 얼마 만에 들어보는 것일까. 물론 내장사는 비구니 사찰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대웅보전 법당에서 독경을 읊는 목소리는 앳되고 어려 아직 변성기를 거치지 않는 듯 아무리 들어도 비구인지 비구니인지 헷갈린다. 그러나 내가 지금껏 들어온 어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도 저렇게 음의 고저를 초월하진 않았다. 그것은 마치 무(無)와 공(空)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했다면 상상이 되시려나.
우리에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한다는 의미)이 있다면 티베트 같은 불국토에선 어딜 가나 흘러나오는 옴마니 받메훔(온 우주에 지혜와 자비가 충만하여 지상의 모든 존재에게 그대로 실현되라는 의미)이 있다. 진언이란, 참 자아에 이르는 의미도 중요하겠으나 같은 음절로 감정의 흔들림 없이 반복적인 소리를 내거나 들음으로써 속가의 중생들이 무아(無我)에 이를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
내장사는 단풍나무 숲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입구 멀찍이 차를 세우고 단풍나무가 도열해 있는 숲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단풍이라고 반드시 붉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아기가 손가락을 활짝 편 모양의 단풍나무 이파리는 연두에서 초록으로 건너가는 6월도 사랑스러움으로 치자면 가을 단풍 못지않다. 한참을 걸어 대웅보전 앞마당 늙은 단풍나무 밑에 서니 누군가 손으로 깎아 공양한 못난이 통나무 의자 4개가 나를 반긴다. 그 중 하나를 잠시 빌린 것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의 아름다운 진언을 듣기 위해서였으니, 폭염을 잊을 만큼 아름다운 독경을 한 시간 이상 듣고도 질리지 않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래서 진언일까. 주변 산세나 풍광에 비해 사찰은 그다지 웅장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어쩌면 내 마음을 움직인 것도 바로 그 점인데 뜻밖에 아름다운 진언을 듣게 됨으로써 내장사는 전날 방문한 선운사와 내소사를 잠시 잊을 만큼 내 마음에 새긴 또 하나의 사찰이 된 셈이다.
전북 정읍에 소재한 내장사는 호남의 으뜸 산으로 알려진 내장산의 정기를 받아 백제 무왕 때 창건된 사찰이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찰이 그러하듯 한국전쟁 때 전소되어 예전의 그 화려함을 대할 순 없지만 108그루의 단풍나무가 자리하는 단풍나무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그 길이 피안으로 가는 길임을 알게 된다. 일주문에서 사찰 뒤 서래봉까지의 비경은 언제 봐도 스케일부터 다르다. 중생의 번뇌와 성찰을 상징하는 숲도 아름답지만 이 사찰의 묘미는 사계절이 모두 특색이 있고 아름답다는 것.
일주문에서 북쪽으로 약수터를 지나 산길을 오르면 과거 벽련암지가 있던 곳이 옛 내장사의 자리라 한다. 산중의 산 내장산 내장사 경내에 남아있는 정혜루기에 의하면 남원의 지리산 등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의 하나로 손꼽힌다. 폭포가 있고 깊은 계곡과 비자림, 굴거리나무군락지 등 천연기념물을 포함해 아름다운 숲은 물론 숲의 주를 이루는 단풍나무의 유명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김인자 시인·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