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과 자서전의 경계는 모호하다. 그게 그거지만 굳이 따진다면 회고록은 사건의 내막과 진상을 중심으로 기록하는 데 반해 자서전은 자신의 일생을 이야기하면서 그때그때 일어난 사안을 다룬다. 진실하게 집필된다면 이들의 역사적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자신의 치적을 지나치게 부풀리거나 사실을 왜곡해 사료적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두환 전 대통령 자서전이나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가 움직인다'처럼 사안이 민감한 경우 내용의 진위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회고록을 꼽는다면 단연 1980년대 출간된 '김형욱 회고록'일 것이다. 출간 당시에는 '박사월'이란 가명으로 출간됐지만, 훗날 김경재 전 의원이 대필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으로 망명한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의 구술을 받아 쓴 것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 비방으로 채웠다. 김형욱의 주장이 너무 일방적이어서 사료적 가치가 훼손됐으나 독재정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까발린 덕분에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당시 서점에서 책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불티나게 팔려 출판사가 수십억 원을 벌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메모광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으로 미국과 관련국이 시끄럽다. 어제 미국 법원이 미 법무부가 신청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조만간 이 회고록이 시중에 뿌려진다. 트럼프는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측근들은 볼턴이 돈을 벌기 위해 '리벤지 포르노(헤어진 연인에게 복수하려 유포하는 동영상과 사진)'를 발간했다고 비난하고 있어 파문은 더 커질 것이다. 회고록이라기보다 '볼턴의 트럼프 대통령 관찰기'에 더 가까우나 어찌 됐건 언론이 대서특필 해주면서 볼턴과 출판사 '사이먼엔슈스터'만 큰돈을 벌게 생겼다.
최근 우리 서점에도 최서원(최순실)의 회고록 '옥중 회오기-나는 누구인가'가 선을 보였다. 초판이 매진돼 증쇄에 들어가는 등 제법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뉘우치고(悔), 깨우쳤다(悟)'는 것과 달리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는 내용이 주류라 언론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했다. 이처럼 모든 잘못은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자신을 미화하는 것은 회고록과 자서전이 갖는 한계다. 역사의 평가를 받을 좋은 기회가 이런저런 이유로 무산되는 점은 아쉽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