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쉼터 소장 자살이유 등 보도
보수언론 허술한 주장 불구 확산
잘못된 '정치적 초기대응'도 일조
위안부운동 새방향 모색 계기돼야

예컨대 '조선일보'에서는 마포쉼터 소장의 자살 이유를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길원옥 할머니가 매달 국가지원금을 350여 만원 받았는데, 이 돈이 다른 계좌로 빠져 나갔고, 며느리 조씨가 이를 추궁하자 소장은 아무런 해명도 못한 채 조씨 앞에 무릎 꿇었다고 17일 기사에서 전했다. 이는 조씨의 일방적인 주장일 따름이다. 양아들 황선희 목사 내외가 할머니의 뭉칫돈을 꾸준히 빼먹었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은 만큼 이런 보도는 성급하고 일방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또한 망자에 대한 엄청난 모독이기도 하다.
다음 날 기사 '길원옥 할머니 치매 앓는 사이… 통장서 뭉칫돈 나갔다'에서는 정의기억연대와 관련된 단체들까지 한데 엮으려는 의도가 두드러진다. 뭉칫돈을 받아간 단체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 미디어몽구의 반박을 보면 '조선일보'의 기사가 얼마나 허술한지 금세 파악할 수 있다. 미디어몽구는 2011년부터 위안부 할머니들의 활동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고, 이를 기특하게 여긴 길원옥 할머니가 미디어몽구에 자동이체 방식으로 2013년부터 매달 1만원씩 후원했으며, 2020년 4월까지 77만원 입금됐다. 이게 과연 기사로 다뤄야 할 만큼 심각한 사안일까. 오히려 문제는 온갖 매체가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을 반복하고 있으며, 미래통합당 곽상도 의원과 같은 정치인이 해괴한 추측을 퍼뜨리며 결탁하는 양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는 데는 정의기억연대의 잘못된 초기 대응이 일조한 측면이 있다. 처음 이용수 할머니의 비판이 있었을 때, 정의기억연대는 정치적 입장에 입각한 찬반 전선을 구축하려고 했다. 조국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대립 양상의 재현으로 돌파하고자 했던 셈인데, 이로써 논점은 하나의 방향으로 확정되고 말았다. 정의기억연대가 정치적인 방식의 해결로 나아가려는 까닭은 '지원금 사용이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란 의혹이 프레임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프레임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으나, 이는 대체로 이용수 할머니를 깎아내리고 모욕하는 방식이기에 동의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구 지역의 정치 성향이 보수란 사실은 분명하지만, 이용수 할머니의 정의기억연대 비판이 지역 성향의 발현이란 반박은 어떠한 논리 근거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국회의원으로 향하는 자신의 꿈이 좌절된 반면,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전 이사장은 국회의원이 되어서 배가 아파 저러는 것이란 비난도 있다. 비유컨대 반민주 세력과 치열하게 맞섰던 민주 인사들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투쟁했던 것일까. 과거 보수언론은 야만적인 시대와의 자기희생적 저항을 개인의 출세욕으로 왜곡하곤 했다. 보수언론의 작태에 냉소하는 나로서는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그와 같은 방식의 혐의에 대해서도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할머니가 92세의 고령이라 기억 왜곡이 있다거나 배후세력이 있다는 의혹은 주체로서의 할머니를 지워버리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내가 바보냐, 치매냐?"란 할머니의 반박에 오히려 동의하게 된다.
정의기억연대의 후원금이 타당하게 집행되었는가는 마땅히 따져봐야 하겠지만, 이는 마녀사냥을 하듯 일순간 몰아칠 일이 아니다. 또한 진영에 입각하여 언 발에 오줌 누듯 방어할 일도 아니다. 이보다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기왕의 위안부운동 성과를 계승하는 한편, 새로운 방향으로의 모색을 꾀하는 것이 아닐까. 예컨대 하워드 제어는 피해자의 상처 치유를 위해서는 회복적 정의에 입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잘못을 입증·처벌해낼 도구로 전락할 응보적 정의의 한계와 그 너머를 제시하고 있다.('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 그러니까 현재의 시끄러운 논란은 위안부운동의 미래와의 관련 하에서 정리해 나갈 필요가 있겠다는 것이다.
피로써 피를 씻을 수는 없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은 피로써 피를 씻는 데 골몰하면서 놓치게 된 어떤 지점을 돌아보도록 한다. 그런데도 날카롭게 칼을 벼리고 다시 피를 씻겠노라 날뛰는 무리만 늘어났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