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명승부 잠실구장이 사라진다
평생 팬을 만들고 소설가도 만들고
미·일 프로구장 '전통 고수'와 비교
개발 아쉽지만 새구장의 탄생 기대

잠실야구장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개최를 계기로 만들었다. 그 대회 결승전이 한국야구사의 최고명승부인 한일전이다. 선동열 선수의 호투, 김재박 선수의 개구리 번트, 무엇보다 8회말 터진 한대화 선수의 역전 3점 홈런은 전국민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이후 프로야구의 숱한 명승부가 그곳에서 펼쳐졌다. 새 야구장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동시에 추억의 장소가 사라지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이미 우리는 동대문야구장을 잃어버린 아픔이 있다. 그 자리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우주선같이 내려앉아 있다. 중국 관광객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지만 야구의 기억은 다 사라져 버렸다. 미국 프로야구단이 방한했으며(1958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국내 최초로 야간조명시설(1966년)이 설치되었고, 고교야구의 성지였으며, 프로야구 개막전(1982년)이 벌어진 것도 기록으로만 남아있다. 필자의 고향은 수원이다. 수원에 야구장이 생긴 것은 성인이 된 후인, 1989년이다. 초등학교 시절, 형의 손을 잡고 동대문야구장을 처음 찾았을 때의 설렘과 경이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 동대문야구장은 사라져 버렸다.
프로야구 경기장은 도심지(都心地)에 있다. 일과를 마친 팬들이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장이 생기면 새로운 중심지가 만들어진다. 1980년대초 잠실 일대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야구장이 들어서고, 지하철이 연결되면서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그러나 야구장의 활용도는 낮다. 시범경기, 포스트시즌을 포함해도 잠실야구장의 사용일수는 연간 200일이 안 된다. 경기 시간도 짧고, 겨울에는 완전 휴장이다. 연중무휴 사용하는 영화관과 비교된다. 도심에 위치한 야구장 부지는 개발사업자의 관심 대상이다. 최근의 마이스사업으로 이 일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고시되었다. 개발의 좋은 점도 있지만, 야구장은 허물어지고 팬들의 추억도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고수하는 곳이 있다.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인 리글리필드는 1914년에 지어졌다. 1988년에야 야간조명시설을 설치했다. 그때까지 종종 일몰(日沒) 서스펜디드(일시정지) 게임이 발생했다. 메이저리그 최고(最古)의 구장인 보스턴의 팬웨이파크는 1912년에 개장했다. 관중 수용규모가 가장 적다. 이들 구장은 건설된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하다.
고시엔(甲子園) 구장은 갑자년인 1924년에 개장했다. 고시엔대회에 출전한 고교 선수들이 기념으로 그라운드의 검은 흙을 퍼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시엔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한신(阪神) 타이거스도 대회가 열리는 기간에는 홈구장을 양보하고 원정을 떠난다. 오사카(大阪)에 고시엔이 있다면, 도쿄에는 1926년에 개장한 메이지진구(明治神宮)구장이 있다. 우리나라의 임창용 선수가 활약했던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홈구장이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곳이 바로 이 곳이다. 하루키는 1978년 진구구장에서 야쿠르트의 개막전을 보다가 선두 타자의 타구 소리를 듣는 순간, 소설가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반면에 개발을 택한 곳도 있다. 도쿄돔은 예전의 고라쿠엔(俊樂園) 야구장을 헐어버리고 새로 지었다. 그곳은 왕정치(王貞治) 선수가 통산 756호 홈런, 세계기록을 세운 역사적인 장소였다. 도쿄돔은 단순한 야구장이 아니다. 대규모 관객이 참여하는 콘서트, 대형 이벤트와 전시장으로 활용한다. 도심의 복합문화공간인 것이다.
야구장은 야구를 하는 곳이지만, 팬들에게는 각자의 추억을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평생 야구팬으로 만들기도 하고, 소설가로 만들기도 한다. 추억의 잠실야구장이 사라지는 것이 무척 아쉽다, 새로운 야구장의 탄생을 기대한다.
/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