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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도등대.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 "역사적 가치" 지정 예고
1903년 점등… 최초 콘크리트 건물


문화재청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팔미도 등대'를 국가 문화재(사적)로 지정하기로 했다. 팔미도 등대는 1903년 세워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식 등대다.

문화재청은 24일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전쟁 문화유산을 발굴해 팔미도 등대를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30일 동안 별다른 이의가 없으면 팔미도 등대는 국가 사적이 된다. 사적이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 건축물과 장소로 국가가 지정한 문화재다.

팔미도 등대는 1902년 5월 소월미도 등대와 함께 건축에 착수해 1903년 4월 준공됐고, 그해 6월 1일 국내 최초로 점등됐다. 팔미도 등대는 서남해에서 인천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콘크리트 건축물이라는 의미도 있다.

문화재청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당시 연합군함대를 인천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인도해 6·25전쟁의 국면을 일시에 뒤바꾸는 데 이바지한 역사와 상징적 가치가 있다"고 지정 예고 이유를 설명했다.

6·25 전쟁 당시 낙동강에서 방어 전선을 펼치던 연합군은 전세를 역전하기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고, 이때 팔미도 등대가 상륙 함대를 유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켈로(KLO)부대의 정예 대원 6명은 1950년 9월 15일 0시를 기해 팔미도 등대를 점령하라는 임무를 받았고, 이들은 전날 저녁 팔미도 잠입에 성공했다. 대원들은 팔미도를 수비하던 북한군과의 교전에서 승리해 9월14일 오후 11시45분 상륙작전의 서막을 알린 점등에 성공했다.

260척의 함선과 7만명의 연합군은 팔미도 등대 점화 덕에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다.

팔미도 등대는 100년 동안 인천 앞바다의 길잡이가 되어주다 2002년 2월 인천시가 유형문화재(40호)로 지정한 뒤 소등했다. 실제 항로표지 기능을 하는 현대식 등대는 2003년 12월 팔미도에 따로 세워졌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