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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죽었다'고 한다. 살아있는 생명체도 아닌데 죽었다니. 이는 소설, 시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많이 줄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요즘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면 증권, 자기 계발, 가벼운 수필류가 상위를 차지할 뿐, 소설집, 시집은 찾아보기 어렵다. 미디어가 문학을 몰아냈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에 '김현' 두 글자를 치면, 전 국회의원 김현이 메인으로 뜨는 것도 이제 '문학의 시대'가 아님을 반증한다. 시집은 100권을 팔기 어렵고, 서점에서 문학평론집이 사라졌다. 미디어 홍수 시대에 이제 더는 문학이 설 자리는 없는 것일까.

70, 80년대를 '문학의 시대'라고 한다. 소설집은 말할 것도 없고, 시집 초판 1천권이 순식간에 매진되기도 했다. 100만권 넘게 팔린 시집 때문에 저 멀리 프랑스 문학계가 충격에 빠졌을 정도다. 심지어 문학평론집을 찾는 독자도 많았다. 문학이 융성할 수 있던 배경에는 물론 작가의 분투가 컸지만, 김현이라는 독보적인 문학평론가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해방 이후 우리 글로 교육받은 한글 세대, 비평을 창작의 경지로 끌어 올렸고, 자신의 비평을 '김현 체'라는 언어로 풀어냈던 평론가 김현. 내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주기가 되는 날이다.

"내 육체의 나이는 늙었지만 내 정신의 나이는 언제나 1960년 18세에 멈춰있다. 나는 거의 언제나 4·19세대로서 사유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 내 나이는 1960년 이후 한 살도 더 먹지 않았다." 김현은 4·19 정신으로 글을 사유하고 글을 썼다. 비록 무명작가의 작품이라 해도 밤을 새워 꼼꼼히 읽고 세심하게 평을 해 주었다. 그의 평에 용기를 얻어 훗날, 한국 문단을 이끄는 중견작가가 한두 명이 아니다. 가스통 바슐라르, 롤랑 바르트, 르네 지라르의 신비평을 국내에 소개한 것도 그였다.

계간지 '문학과 사회' 여름호는 '고 김현 30주기 추모 특집'을 싣고 그를 추념했다. 8월에는 '김현의 프랑스 문학 연구와 한국문학 비평'을 주제로 심포지엄도 열릴 것이다. 비 오는 날, 그의 유고집 '행복한 책 읽기'(문학과 지성사 간)를 꺼내본다. 1989년 고 기형도 시인의 '입속의 검은 잎' 해설에 수록된 한 구절에 눈길이 머문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 정신적으로 죽는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