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미국 오리건주와 미시간주의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오염된 쇠고기 분쇄육이 들어간 햄버거를 먹고 40여명이 경련성 복통, 구토, 설사 증세를 보였다. 조사결과 병원체 'O-157:H7'로 인한 장출혈성 대장균 합병증인 '용혈성 요독증후군(HUS)'으로 밝혀졌다.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병원체고, 심할 경우 콩팥에 심각한 손상을 줘 큰 뉴스가 됐다. 햄버거를 먹다가 감염됐다고 해서 그때부터 '햄버거 병'으로 불렸다.
우리나라에서도 2016년 9월 평택에서 4세 아이가 부모와 유명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햄버거를 먹고 HUS에 걸려 신장장애 2급 판정을 받기도 했다. 부모는 패스트푸드점을 상대로 오랜 소송을 진행했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는 등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햄버거 병'은 신장이 불순물을 제대로 걸러주지 못해 손상된 적혈구가 콩팥에 찌꺼기로 쌓이면서 생긴다. 건강한 성인은 1~2주 이내에 큰 후유증 없이 치유되나 5세 미만의 어린이와 노년층은 이 균에 취약해 HUS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햄버거 병'은 환자의 5%가 손상된 콩팥이 회복되지 않아 평생 투석치료를 받아야 하는 심각한 감염병이다. 감염병 예방관리법에 따라 결핵, 수두, 홍역, 장티푸스, 한센병 등과 함께 제2급 감염병으로 지정돼 발병 또는 유행 시 24시간 내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안산의 한 유치원에서 장출혈성대장균 감염증이 집단 발병해 방역 당국의 역학조사가 진행 중이다. 환자 111명 중 15명이 이른바 '햄버거 병'으로 불리는 HUS 의심 증세를 보이고, 이중 4명이 신장기능 저하로 투석 치료까지 받고 있다고 한다.
장출혈성대장균감염증 환자는 2016년 104명, 2017년 138명, 2018년 121명, 2019년 144명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이번 안산사고는 국내 최대 집단발병일 가능성이 높다. HUS는 대부분 충분히 가열하지 않은 소고기 가공품에서 발견되지만, 드물게 오염된 퇴비로 기른 채소류 등을 통해서도 감염된다. 고기는 충분히 익히고 날 음식과 익힌 음식의 조리도구도 따로 사용해야 한다. 가령 고기를 구운 후 생고기가 있던 접시에 담는 것도 위험하다. 음식이 상하기 쉬운 여름철이다. 위생관리가 까다로운 어린이 집단시설에서는 사람끼리의 감염도 발생할 수 있으므로 그 어느 때보다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