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오디션 프로그램 흥행 힘입어
요즘 '트로트 전성시대' 거센 열풍
문제는 인기콘텐츠 우려먹기 병폐
방송사마다 비슷한 예능프로 범람
획일화는… 시청자 피로·외면 불러


김정순
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전에 없이 트로트 열풍이 거세다. 트로트 예능이 온통 방송가를 점령하면서 양적 성장은 물론 사회적 평가까지 바꿔놓고 있다. 얼마 전 제1야당의 비대위원장이 '백종원' 대세론 거론 당시 '임영웅'(트로트 인기 가수)은 어떤가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다. 물론 조롱에 가까운 비유이고 정치권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트로트 열기의 단면을 보여준 것은 확실해 보인다. 사실 트로트 장르는 지난해 TV조선 오디션 프로그램인 '미스트롯'의 인기 덕분에 재조명이 시작됐다. 올 상반기 '미스터트롯'까지 흥행에 성공하면서 트로트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지상파 3사는 물론 종편이나 케이블 채널까지 트로트 예능프로가 11월까지 중점적으로 편성되어 있다고 하니 그 열기를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물론 트로트의 가치나 관련 예능 방송을 폄훼하자는 것이 아니다. 아이돌 중심 K팝 일색인 한국 대중음악 장르가 트로트 열풍으로 바뀌면서 저변을 확대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송가인'을 필두로 트로트가 중장년층에게 미친 인기몰이 기세는 실로 엄청났었다. 이 여세를 몰아 올해는 1020 세대까지 즐기는 장르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덕분에 뽕짝이라 불리며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장르가 인기 높은 트로트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방송 광고 수입 하락세 속에서도 트로트 예능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4월 언론사 경영 성적 발표에 의하면 JTBC와 채널A가 각각 252억원, 158억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오직 지난해 '미스트롯' 열풍 효과를 톡톡히 본 TV조선만 144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트로트는 예능계의 핫 콘텐츠로 등극한 것이다. 이처럼 트로트 열풍이 방송가나 우리나라 대중문화에 긍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넘쳐나는 트로트 예능으로 인한 시청자의 피로감 문제도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방송사들이 스타 트로트 가수들을 앞다투어 출연시키거나 흥행위주의 과도한 트로트 예능이 국민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처럼 트로트 예능 문제 노정 속에서 필자는 무엇보다 방송 예능의 획일성이 걱정이다. 심각한 수준의 획일적인 방송 프로그램에서 과연 효능감이 있을지 우려스럽다. 인기 콘텐츠 우려먹기는 방송사의 고질적 병폐가 아니던가? 새로운 시도 없이 오직 인기 프로그램만 쫓아 방송사마다 비슷한 콘텐츠 범람은 상상만으로도 피로를 느끼게 해준다. 어떤 채널을 돌려도 동일 출연자가 나오거나 엇비슷한 프로그램일 때 그 피로감을 경험해본 사람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이 편성되어야 할 이유는 많다. 시청률과 트렌드만 쫓다 보면 시청자들의 피로감은 높아지고 방송 프로의 효능감은 낮아진다.

방송 프로그램의 효능감은 각 프로그램이 가지는 독창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가 가미된 프로의 편성 속에서 가능하다. 그야말로 재탕 삼탕 우려먹기 식의 매번 비슷한 프로를 봐야 하는 식상함 속에서는 방송프로의 효능감을 찾기란 어려운 것이다. 시청률에 매몰되어 비슷한 장르 인기 프로만 고집할 때, 결국은 시청자들에게 외면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특정 트로트 가수의 인기몰이도 좋지만 계속 같은 톤의 예능을 고집할 때 이들의 이미지는 곧 소진되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트로트 예능의 획일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예능프로 편성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TV를 보면서 하루 동안의 피로를 풀고 싶은 시청자들의 소박한 바람을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코로나로 힘들고 지친 일상 속에서 가족 간 소통에 도움이 되거나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긍정의 가족관을 심어 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 그립다. 저널리즘의 여러 연구에서 나온 것처럼 방송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정보를 주고 상식과 개념형성 기여는 물론 문화 형성에도 영향을 준다. 획일적인 트로트 예능으로 피로감을 주기보다 효능감을 높이는 시사 교양프로 등 다양한 편성이 필요한 이유다.

/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