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어도 가슴이 먹먹하다. 세 가지 이유다. 지금도 여전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처절했던 그때 그 기억. 그리고 김지하. '신 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오직 한 가닥 있어/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이다. 이 시는 1975년 창작과비평 봄 호에 발표된 시로 독재정권하에서 한동안 금지됐다가 1982년 김지하의 시선집 '타는 목마름'에 재수록됐다. 하지만 이 시집도 군사정권에 의해 금지서적으로 묶였다.
타·는·목·마·름·으·로 7자에는 유신에 반대하다 옥살이를 한 김지하의 영혼, 저항정신이 깃들어 있다. 노래로 만들어 지면서 3연 25행의 이 시는 '민주화의 상징'이 됐다. 몰래 대자보를 붙이고, 누군가 뒤따라 올까 봐 어둠 속을 쏜살같이 도망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여명을 헤치고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민주화를 갈망하던 시절이었다.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발자국 소리 호루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중략) 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이 시집을 다시 꺼내 읽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다시 든 건 대학가에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는 소식을 접해서다. 대학 캠퍼스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인 20대가 최근 법원에서 '건조물침입' 혐의로 벌금 50만원의 유죄 선고를 받자, 보수 성향 단체가 이에 반발해 전국 430개 대학에 대자보를 붙였다고 한다. 지금은 2020년. 40여 년 만에 '타는 목마름으로'가 소환된 것이다.
이 시를 읽고, 이 노래를 부르며,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애타게 찾던 이들 상당수가 지금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에서 일하고 있다. 그랬던 그들이 정권을 잡은 후 그들이 그토록 경멸했던 타도 세력을 닮아가고 있다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려하는 소리도 터져 나온다. 어찌됐건 '표현의 자유'는 지켜져야 한다. "국민은 얼마든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다. 그래서 불만을 해소할 수 있고 위안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