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길 안병욱 김형석 탄생 100주년
김태길, 간결한 글 독자 공감·소통
안병욱, 민족정신 녹인 삶의 메시지
김형석, 관념·대상 인생사로 풀어내

1960~80년대에 젊은 날을 통과해온 많은 사람들에게 이분들의 이름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분들은 독자들을 많이 거느렸던 스테디셀러 작가들이기도 하다. 세 분은 1920년생 동갑내기였으니 따라서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게 된다.
이분들이 수행한 수필과 철학의 상호 결합 방식을 두고 '수필철학(essay philosophy)'이라고 부른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약간이나마 냉소적 반응을 품은 듯한 명명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철학적 사유의 소통을 가능케 한 문장의 친화력으로 이분들 작품의 정수를 기억해도 좋을 것 같다.
김태길은 충북 충주 출신으로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쓴 첫 수필은 1955년 '사상계'에 발표한 '서리 맞은 화단'이었다. 1961년 첫 작품집 '웃는 갈대'를 시작으로 하여 그는 누구보다도 철학과 문학의 접점을 찾으면서 그 장르로 수필을 선택했고, 창작 과정에서 공감과 소통을 가장 중히 여긴 수필가로 인정받고 있다.
단아하고 아담한 문채(文彩)를 통해 군더더기 없는 매끈한 글을 주로 썼다.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 배운 '글을 쓴다는 것'은 그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짧고 간결한 표현 속에 은근한 함축이 담긴 글을 사랑한다"라는 그의 좌우명을 실천한 사례이다.
그의 글이 독자를 공감과 소통의 장으로 이끄는 것은 이러한 글의 품격과 구체성 때문이다. 중후한 철학적 사색과 매끈한 글쓰기에 매진했던, 스스로의 글쓰기를 즐겁고도 성실한 작업으로 여겼던 수필가가 김태길이었다.
안병욱은 평남 용강 출생으로 일본 와세다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생활적 구체성에 토대를 둔 철학적 수필을 쓰면서 일찌감치 여러 베스트셀러를 펴내 삶과 인간에 대한 개성적 메시지로 주목받았다.
안병욱의 이념적 기반은 흥사단의 무실역행 정신이었는데, 3·1운동과 같은 독립운동의 맥락에 놓인 민족정신이 그 실질이었다. 안병욱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도산 안창호의 사상은 이러한 민족정신으로 충일한 것이었다. 명징한 문장과 진리 추구의 열정으로 당대 소개되기 시작한 서구 철학의 요체를 전달해준 공로도 크다.
대표작 '행복의 메타포'는 행복에 대해 일상적 경험과 순정한 필력으로 담아낸 명편이다. 사랑과 노동과 신앙을 행복의 정의로 제시한 이 작품은, 인생의 의미를 행복에 둔다고 할 때 그 실체가 보람을 느끼며 사는 긍정적 생활 태도에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인생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펼쳤다는 점에서 수필의 본질이 잘 드러나고 있다.
김형석은 평남 대동에서 태어나 일본 조치대학 예과와 철학과에서 공부했다. 중학교 교사로 생활하다가 1954년부터 연세대 교수로 재직했다.
그의 수필은 어떤 특별한 주제의 구심보다는 삶에서 마주치는 여러 철학적 관념이나 대상을 구체적 인생사로 풀어내는 경향이 강하다. 순간과 영원을 오가는 수필가로서의 부지런하고 단아한 글쓰기 방식이 그의 양도할 수 없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종교적 감수성에 토대를 둔 공감과 친화의 문장을 통해 진중한 철학적 진경을 열어놓았다.
그의 대표작 '수학이 모르는 지혜'는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증명해준다. 눈앞의 이익에 너무 매달리면 정작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역리(逆理)를 친절한 우화의 제시를 통해 알게 해주는 인생론적 수필이다. 현역으로서 아직도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는 그의 창작 여정이 수필의 한 역사를 쓰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세 분은 우리 수필의 품격과 진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난해한 개념으로 인해 다가가기 어렵기만 했던 철학이라는 학문을, 수필이라는 소통 지향적 장르와 결합하여,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의 깊이를 더하게끔 한 이분들 공적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많은 이들의 마음에 남기를 소망해본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